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마친 쿠팡이 본격적으로 경제단체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그동안 각종 노동 관련 현안으로 곤욕을 치렀던 데다, 향후 이 문제들이 더욱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재 쿠팡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대외 역량 강화가 아닌 내부 체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쿠팡, 경총 가입 타진 속내는
쿠팡은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가입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은 회원사들이 규제, 법적 이슈 등에 공동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제 단체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동으로 가입되는 대한상공회의소와 달리, 자발적으로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쿠팡은 "가입 절차를 알아봤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조만간 쿠팡이 경총 등 경제단체 가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쿠팡을 둘러싼 노동 관련 이슈들이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쿠팡은 최근 배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쿠팡이츠 사업이 커지면서 배달 수수료 등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에 따라 쿠팡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커머스 업계를 둘러싼 규제 강화 흐름도 쿠팡이 경총 가입을 타진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이커머스 업계에 대해 ▲ 중대재해법 적용 ▲ 셀러-소비자 간 분쟁 연대 책임 ▲ 대금 정산일 제도화 ▲ 입점업체 계약 공정성 강화 ▲ 새벽 배송 규제 등의 규제 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대금 정산일 제도화와 새벽 배송 규제는 쿠팡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쿠팡은 이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긴 편인 40일가량의 정산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적자 사업 구조 탓에 유동성 확보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또 새벽 배송은 쿠팡의 성장을 이끈 핵심 경쟁력이다.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칼을 대겠다고 나서는 것은 다분히 쿠팡을 겨냥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쿠팡이 경총 가입을 타진하는 것은 정부의 이런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쿠팡이 강한승 사장을 경영총괄 대표에 선임한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강 사장은 청와대 비서관, 김앤장 변호사 등을 거쳤다. 법조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 쿠팡이 강 사장의 대관 역량을 활용해 쿠팡의 입장을 정부측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전에 움직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 '자체 변화' 비전 제시 선행돼야
업계에서는 쿠팡이 대외적인 대응 역량 강화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부적인 시스템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쿠팡은 물류, 배송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쿠팡의 사업 구조상 노동 관련 이슈들은 지속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근 산업계의 주요 화두는 공정성과 ESG다. 쿠팡이 외부 대응 역량을 강화한다고 해도 내부적인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에서 늘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단체 가입을 통한 목소리 키우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무리 단체 차원에서 친(親) 기업적 입장에 힘을 싣는다 하더라도 논란에 휩싸인 기업까지 변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쿠팡이 스스로 내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는 한 외부 단체의 지원 사격도 힘을 얻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쿠팡의 메시지 전달 전략 수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까지 쿠팡은 물류센터 건설 등 투자를 이어갈 때마다 고용 창출, 지역사회 공헌 등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쿠팡이 높은 호감도를 얻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노동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현 상황에서 이런 전략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정작 중요한 일자리의 질과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해서는 외면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변화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현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한 만큼 이제 쿠팡에 대해 거는 기대는 성장이 아닌, 업계를 선도할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지금껏 노동 이슈 등에 직면할 때마다 개선 의지를 표명하는 것 이상의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며 "이제 업계를 선도하는 입장에 선 만큼 외적 역량 강화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부 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