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특수로 깜짝 실적을 냈던 라면 업체들이 올해는 실적 하락에 울상을 짓고 있다.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등 국내 주요 라면 업체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라면 업체들의 실적이 워낙 좋았던 터라 올해 역기저 효과가 나타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체들은 다만 원재료 값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라면값을 인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는 현재 분위기상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어서다. 지난해 좋은 실적을 냈던 것이 되레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깜짝 실적'으로 올해 역기저 효과
국내 주요 라면 업체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악화했다. 농심은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6344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7% 줄었고, 영업이익은 283억원으로 55.5% 감소했다. 삼양식품 역시 매출은 1400억원으로 10.5%, 영업이익은 143억원으로 46.2% 줄었다. 오뚜기의 경우 매출액은 5600억원으로 전년보다 3.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02억원으로 12.2% 감소했다.
지난해 라면 업체들은 코로나19로 일년 내내 좋은 실적을 거뒀다. 특히 1분기에는 전 세계적인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면서 이례적인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다소 사그라지면서 라면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올해 1분기 라면업체들의 매출액이 감소한 이유다.
업체들은 라면에 대한 수요가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영업이익이 줄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라면업체들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소맥 선물가격은 톤당 238달러로 지난해보다 18% 올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팜유 현물 가격은 톤당 980달러로 56%나 급등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물류비용도 오르면서 수익성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 라면 업체들의 설명이다.
증권가 "가격 인상 전망"…업체들 "아직"
증권가에서는 라면 업체들의 라면값 인상이 임박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초부터 국내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조만간 라면값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재료 부담 상승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농심이 하반기에 라면 또는 스낵 부문의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라면 업체들은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라면은 대표적 서민 음식이다. 그런만큼 가격을 인상할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곤 했다. 그 탓에 농심은 주력 제품인 신라면 가격을 2016년 이후 동결했고, 삼양식품은 2017년 삼양라면 가격을 인상한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오뚜기도 2008년 이후 13년 동안 진라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라면값을 인상할만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한 라면 업체 관계자는 "올해 초 오뚜기가 라면값을 인상하려다가 철회한 것도 코로나19 사태와 무관치 않다"며 "라면값을 올리기는 평소에도 쉽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더욱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국내 라면 업체들이 일제히 좋은 실적을 냈던 게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불과 1년 전에 역대 최대 실적을 낸 라면 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할 경우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라면 업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가격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구체적으로 인상 방안을 검토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