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다(삼양식품)
가격 인상을 최대한 미뤄왔다. 더 안전하고 맛있는 제품으로 보답하겠다(팔도)
라면값 도미노 인상이 현실화했다. 오뚜기가 총대를 맨 뒤 농심과 삼양식품, 팔도가 뒤를 따랐다. 예상했던 바다. 이로써 국내 주요 제조 업체들 모두 라면값을 인상했다. 라면 업체들은 한목소리로 그간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 오랜 기간 가격을 '사수'해왔다며 이번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올해 상반기부터 라면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 특수' 덕분에 좋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실적이 악화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원재료 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수익성도 악화했다. 라면 업체들은 평소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가격 인상을 자제해왔지만 '악재'가 겹치면서 도미노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삼양·팔도도 인상 대열…"원재료값 부담"
삼양식품은 다음 달 1일부터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 등 13개 제품 가격을 평균 6.9% 인상한다고 밝혔다. 삼양식품의 라면 가격 인상은 2017년 5월 이후 4년 4개월 만이다. 같은 날 팔도 역시 라면값을 평균 7.8%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전 제품 가격 인상은 지난 2012년 6월 이후 9년 2개월 만이다.
이로써 국내 주요 라면 업체들 모두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앞서 오뚜기는 지난 1일부터 진라면과 스낵면 등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11.9% 인상했다. 농심도 오는 16일부터 라면 전 제품 가격을 평균 6.8% 인상키로 한 상태다.
라면 업체들이 이처럼 줄줄이 가격을 인상한 것은 제조 원가 상승 부담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부담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농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소맥 선물가격은 톤당 238달러로 지난해보다 18% 올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팜유 현물 가격은 톤당 980달러로 56%나 급등했다.
이 탓에 실제로 올해 주요 라면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했다. 농심의 1분기 영업이익은 283억원으로 전년보다 55.5% 감소했다. 삼양식품 역시 영업이익 143억원으로 46.2% 줄었다. 오뚜기도 영업이익 502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12.2% 감소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부진한 실적이다. 2년 전인 지난 2019년 실적보다도 악화했다.
올해 초부터 인상 움직임…결국 '정면 돌파'
증권가에서는 이미 올해 상반기부터 라면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해왔다. 특히 올해 초부터 국내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라면 업체들도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재료 부담 상승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농심이 하반기에 라면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라면 업체들은 이런 전망에 고개를 저었다. 라면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만큼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어서다. 더욱이 지난해 좋은 실적을 냈던 것이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실제 오뚜기의 경우 올해 초 진라면 가격을 9%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 악화에 철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업 환경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라면 업체들은 오뚜기를 필두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대신 자사의 라면값 인상이 얼마나 오랜만인지를 알리며 이번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오뚜기는 약 13년 만의 인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가격은 물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보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심은 "라면이 국민 식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최소한의 수준에서 가격을 조정했다"며 "더 좋은 맛과 품질의 제품으로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양식품의 경우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게 돼 송구스럽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 업체들의 가격 인상 러시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면서 "라면이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만큼 가격 인상 시 소비자들의 저항이 가장 큰 품목이라는 것을 업체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더 이상은 원재료값 인상을 감내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멘트는 인상 때마다 나왔던 공식 같은 말이다. 가격을 인상한 만큼 향후 얼마나 더 좋은 제품을 내놓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