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공급 부족과 위드 코로나 이후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고 있다. 여기에 유가 등 에너지 가격과 인건비·물류비까지 오르며 가격 인상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밥상 물가가 안정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업계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미 올해 가격 인상으로 원가 압박에 대응했다. 따라서 단기간 내에 추가적인 가격 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원가가 올라가는 만큼 실적 저하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공급이 안정화된 이후에야 어느 정도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지난 10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133.2포인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대비 3%, 전년 대비 31.3% 급등한 수치다. 2011년 7월 이후 10여 년만에 최고치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총 24개 품목의 가격 동향을 분석해 국제 시세를 반영한 후 산출한다. 올해는 2014년~2016년의 평균 가격을 100으로 환산한 후 가격 변동을 비교한다.
대부분 주요 식품 원재료의 가격이 올랐다. 10월 곡물 지수는 137.1포인트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3.2% 증가했다. 유제품 지수는 전월 대비 2.2% 오른 120.7포인트였다. 같은 기간 유지류 지수는 9.6포인트 오른 184.8포인트로 가장 많이 올랐다. 반면 옥수수와 쌀 지수는 주요 생산국의 수확이 시작되며 다소 진정됐다. 육류 지수는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 감소 등에 따른 수요 축소로 전월 대비 0.7% 하락했다.
국내 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과일 매입가격은 전년 대비 10% 이상 올랐다. 특히 자몽·아보카도 등 남반구 지역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과일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국내에서는 육류 가격도 오르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냉동 수입 삼겹살 가격은 전년 대비 30% 이상 올랐다. 냉동·냉장 쇠고기의 가격 인상률은 돼지고기보다 높은 40%에 달했다.
'공급'은 코로나, '수요'는 포스트 코로나
식량 가격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은 '기상이변'이다. 곡물 주요 산지인 미주대륙·러시아 등에 폭염과 가뭄 등으로 수확량이 급감했다. 코로나19도 악영향을 끼쳤다. 격리 정책이 시행되면서 노동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식품 원재료 선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세계 팜유 생산량 2위 말레이시아의 노동력 부족 우려로 팜유 선물 가격이 폭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탈석탄 정책' 확산에 따른 '그린플레이션'도 영향을 미쳤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 경제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 수요가 늘고 생산이 줄어들며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아직 친환경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급격히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그린플레이션에 따른 에너지 원가 폭등은 이를 활용하는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농업과 식품제조업도 이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위드 코로나'도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글로벌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기간이 길어지며 항만 노동자 상당 수가 일터를 떠났다. 그 결과 늘어난 물동량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 내 화물 컨테이너 40%를 처리하는 LA항에서는 한때 70여 척의 배가 하역을 하지 못하는 정체 현상을 겪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생산량이 줄어든 상태는 그대로지만 각국이 경제 회복 정책을 앞다퉈 시행하면서 모든 제품군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며 "공급량은 아직 코로나19 사태 와중인데, 경제만 포스트 코로나가 된 것과 비슷하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빠른 해결 불가능…"일단 버텨야"
밥상 물가 폭등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 식품 제조업체는 매년 원자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올해 원가의 영향이 내년까지 이어진다. 국제 정세도 좋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교역 문제로도 확산돼 물가 상승 압박을 줄 수 있다. 세계 최대 석탄 생산국 중국은 내년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이유로 '탈석탄'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더 이상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이미 대부분 식품업체가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라면 가격은 올해 11% 올랐다. 2009년 2월 이후 13년만의 최대 인상률이다. 스낵·면류·빵·햄·우유 등 대부분 가공식품 가격도 올랐다.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3.2% 올라 9년 9개월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도시 가계가 생활을 위해 구매하는 소비재·서비스의 가격변동을 나타내는 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가격 인상을 강행한다면 소비자들의 저항을 피할 수 없다. 정부도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7월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서민 생활 안정과 과도한 인플레이션 차단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식품업계에서는 당분간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다. 위드 코로나가 자리잡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야 최소한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국제 경제 불안정성에 따른 것으로, 어느 정도 소비자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원가 상승에 또 다시 가격 인상으로 대응한다면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고, 정부가 이를 차단할 가능성도 높다. 당분간은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