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연휴 장바구니 물가는 '역대급'이었다. 정부가 물가 안정 대책을 통해 주요 품목의 가격을 전월 대비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식료품 등 '밥상물가'가 10년 만의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물가 상승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물가 상승은 설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외부 요인이 너무 크게 작용해서다. 국제유가는 최근 7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른 공공요금 인상도 예정됐다. 게다가 장류 등 식료품과 외식업계발 가격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당분간 소비자 부담 가중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반면 물가 상승 속에도 '프리미엄 설 선물' 매출은 크게 올랐다. 주요 백화점 모두 전년 대비 설 선물세트 매출이 성장했다. 특히 10만원~20만원 대 고가 선물이 많이 팔리며 매출을 견인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비대면 명절과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완화를 이유로 꼽았다. '가치소비' 트렌드가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안 오른게 없다. 모든 게 비싸졌다.
과자나 우유값이 올랐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설날이 다가와 직접 장을 보니 물가가 엄청나게 뛰었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몇 개 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미 생각했던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아무래도 최대한 간소한 설을 보내야 할 것 같네요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의 A대형마트에서 만난 소비자 이주연(50·여)씨의 말이다.
물가 폭등의 여파가 설 연휴를 덮쳤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aT)에 따르면 올해 대형마트의 주요 설 성수품 가격은 35만7188원이었다. 전년 대비 약 6만원 올랐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25%나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밥상물가 폭등의 영향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식료품·음료 가격은 전년 대비 5.9% 인상됐다.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은 달걀이었다. 달걀은 전년 대비 41.3%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배·복숭아·수박·딸기 등 과일 가격도 평균 20% 이상 인상됐다. 아울러 우유·치즈·계란(11.4%), 육류(8.4%), 빵·곡류(6.3%)와 채소류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 이렇게 올랐던 가격이 설 연휴 수요 폭등과 맞물리며 소비자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설명이다.
밥상물가 상승은 전세계적 이상기후 및 코로나19 확산의 결과다. 주요 곡물 산지가 냉해를 입으며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 코로나19로 각국 항구가 마비되며 물류비도 늘었다. 여기에 국제유가까지 상승하며 생산자 부담이 더욱 커졌다. 국내에서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도 물가 상승 요인이었다. 달걀에서부터 시작된 축산물 가격 상승이 1년 내내 이어졌다. 더불어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소비촉진 정책이 물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휴 끝나면 물가 안정될까?…"No"
설 연휴 이후로도 물가는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성과도 없지는 않았다. 정부는 연초 '설 민생 대책'을 발표하며 16개 성수품 공급을 늘려 가격을 제어했다. 그 결과 관리품목 중 15개 품목의 가격을 2주 전 대비 끌어내렸다. 하지만 그 이전의 물가 상승 폭이 너무 컸기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실제 물가까지 잡지는 못했다.
정부 대책이 앞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물가 상승 요인이 너무 많아서다. 먼저 국제유가의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올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예상도 많다. 이는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다. 국내에서도 최근 휘발유 가격이 10주 만에 올랐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가격도 강세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곧 생산자의 원가 압박이다. 따라서 최종 소비자가 내야 할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공공요금도 오른다. 한국전력공사는 4월·10월 2회에 걸쳐 전기요금을 10.6% 인상한다. 가스요금은 5월·7월·10월 연달아 오른다. 게다가 설 연휴 이후 고추장·간장·된장 등 기본 식재료의 가격도 인상되며, 아이스크림의 가격이 오를 것도 확실시된다. 외식업계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에서부터 커피값 인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래지 않아 대부분 타 외식업체도 가격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소비자 부담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 상승은 국내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며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고 시장 수요가 정상화되면 더 빠르게 오를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아도 이를 강제로 통제할 수는 없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감지되는 등 국제적 악재도 남아 있다. 당분간 물가 안정 또는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비싼 김에 확실하게"…프리미엄 '대세' 된 까닭
반면 물가 상승에도 '프리미엄' 수요는 이번 설에도 굳건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10만원~20만원대 고가 선물세트의 매출은 전년 대비 34% 늘었다. 15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과일세트 매출이 같은 기간 80% 증가하며 전체 매출을 이끌었다. 주류에서도 10만원 이상 상품의 매출이 지난 설 대비 183%나 올랐다.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의 프리미엄 설 선물세트 매출도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초고가 상품에 대한 수요도 높았다. 신세계백화점이 올해 설을 맞아 내놓은 프리미엄 샴페인 및 와인 한정 상품은 완판을 기록했다. 단 6병만 판매되는 2400만원짜리 최고가 상품 '올리비에 번스타인 2018 그랑 크뤼'도 완판을 앞두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선보인 300만원대 한우 선물 '프레스티지 세트' 등도 준비된 물량 대부분이 소진됐다. 250만원짜리 굴비 세트도 70% 이상 팔리는 등 고가 축산·수산물 모두 인기를 끌었다.
업계에서는 비대면 명절의 대중화가 프리미엄 상품 매출 성장의 이유라고 분석한다. 고향 방문이 어려워진 만큼, 높은 품질의 선물로 마음을 전하려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김영란법 완화 등도 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이번 설 민생안정대책에서 농축수산물 등의 선물가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아울러 비싸더라도 확실한 선물을 구매하려는 '가치소비' 심리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가 올라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도 많지만 직접 고향을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 예산을 선물세트에 집중 사용하는 소비자도 많다"며 "최근 가치소비 트렌드 확산으로 기왕에 선물하려면 더 좋은 상품을 전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설을 겨냥한 유통업계의 적극적 마케팅이 맞아떨어지면서 프리미엄 선물 매출이 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