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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광야와 빙그레 왕국, 두꺼비월드의 공통점

  • 2022.09.16(금) 06:50

유통가, MZ세대에 먹히는 '세계관' 마케팅
캐릭터 도입하고 배경 스토리·관계성 입혀
소비자와 양방향 소통…콘텐츠 재생산·확장

에스파 세계관 속 광야의 모습./사진제공=SM엔터

광야로 걸어가 알아 네 홈 그라운드(에스파, Next level')
달라졌어 우리가 광야를 넘어 돌아올 때(에스파, 'Girls')

여러분은 '광야'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이육사 시인이 가장 먼저 떠오르셨다면 '아재 인증'입니다. 에스파와 블랙 맘바가 떠오르신다면, 이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광야(KWANGYA)는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공간입니다. 에스파 멤버들이 이 '광야'에 모여 블랙 맘바와 싸우는 게 에스파 세계관의 중심 스토리입니다.

에스파 팬들은 유튜브 영상의 오브젝트와 멤버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누가 '흑막'인지를 추리합니다. 이 이야기를 모른다면 에스파의 노래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덕질도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세계관' 설정은 에스파만의 것은 아닙니다. SM 선배 그룹인 엑소는 각 멤버가 '엑소플래닛'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있습니다. 카이는 순간이동, 디오는 힘, 수호는 물 등 멤버별로 각자 다른 초능력도 지니고 있죠. 

갑자기 웬 아이돌 세계관 강의냐구요. 최근 유통업계의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이 '세계관 마케팅'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캐릭터들이 살아숨쉬는 세계관을 만드는 건 이제 필수가 됐습니다. 소비자들이 깊게 파고들며 콘텐츠를 재생산할 수 있는 '양식'을 제공하는 거죠.

카카오프렌즈의 주요 캐릭터./사진제공=카카오프렌즈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카카오프렌즈를 들 수 있습니다. 어피치와 무지, 라이언 등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무지는 토끼 같지만 사실 토끼 옷을 입은 단무지죠. 흰 오리 튜브는 오리임에도 발이 작아서 늘 오리발을 끼고 다닙니다. 이모티콘에서도 종종 발이 날아가곤 합니다. 라이언은 '갈기가 없어 고민하는 사자'라는 캐릭터 설정이 반향을 얻으며 카카오프렌즈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죠. 

캐릭터 간 '케미(서로간의 조합)'도 꼼꼼하게 설정돼 있습니다. 프로도와 네오는 연인이며 작은 악어 콘은 무지를 키운 주인입니다. 이 때문에 이모티콘에서도 무지와 콘은 한 세트인 경우가 많습니다. 콘은 단무지 다음으로 복숭아를 키워보고 싶어 어피치를 노리고 있죠. 최근에는 라이언이 유기묘인 춘식이를 입양하면서 춘식이가 새로운 인기 캐릭터로 떠올랐습니다.

빙그레의 뮤지컬 '빙그레우스를 위하여'./사진=빙그레 유튜브

유통업계에서도 '세계관 마케팅'을 통해 이미지를 180도 바꾼 기업들이 많습니다.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세계관'이 대표적입니다. 빙그레우스 세계관은 빙그레의 인기 제품들을 의인화해 순정만화풍 캐릭터로 재창조한 세계관입니다. 주인공이자 빙그레 왕국의 왕인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짐'을 비롯해 '투게더리고리경', '옹떼 메로나 부르쟝' 등 각종 밈을 활용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빙그레우스 세계관은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2020년 유통업계의 가장 '핫한' 마케팅이 됐습니다.

이후 캐릭터 마케팅에서 세계관 구축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진로 두꺼비'를 캐릭터화하며 세계관 설정을 풀어놨습니다. 1955년생으로 나이가 많지만 2019년 "진로 이즈 백"을 외치며 회춘한 핵인싸 모델이라는 식입니다. 동갑내기 여친인 핑크두꺼비는 매콤한 안주 먹방을 즐기는 인싸 요정이죠. 두꺼비들이 사는 '두꺼비월드'를 활용한 CF도 지난 5월 선보였습니다.

오늘의집은 집냥이와 집멍이라는 고양이·강아지 캐릭터를 앞세워 세계관 구축에 나섰습니다. 오늘의집의 주 이용층인 2030세대는 반려동물 호감도가 높은 연령대라는 점을 공략한 겁니다. 사회초년생 고양이인 집냥이는 오늘의집 초창기, 직원이 기르던 고양이 '먼지'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입니다. 집멍이는 3살짜리 수컷 골든리트리버로, 집냥이에게 자주 '냥냥펀치'를 맞는 착한 강아지죠.

이들과 함께 사는 인간 캐릭터 '집순이'와 '집돌이'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만명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집냥이와 집멍이는 오늘의집 서비스 페이지, 이벤트 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활약 중입니다. 이밖에도 삼양식품, 요기요 등도 최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자사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의집의 집냥이·집멍이./사진제공=오늘의집

기존에 게임과 영화 등으로 세계관을 구축한 캐릭터들을 끌어와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올해 식품업계 최대 히트작인 SPC삼립의 포켓몬빵은 출시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장에서 찾기 힘든 '레어템'이죠. '포켓몬 유니버스'는 누적 매출 160조원이 넘는 전세계 미디어믹스 매출 1위 세계관입니다. 유치원생부터 40대 아저씨까지 모두 '피카츄'를 찾게 만드는 힘은 닌텐도가 20년간 게임과 애니메이션, 만화책, 굿즈로 구축한 세계관의 힘입니다.

기업들이 '세계관'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세계관을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캐릭터 몰입도가 달라집니다. 소비자가 캐릭터와 세계관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소비자가 주어진 캐릭터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양방향 소통이 시작되는 겁니다. 

일단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세계관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가 돼 생존을 이어갑니다. '2차 창작'의 세상이 열리는 겁니다.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인 만큼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역시 남다릅니다. 각종 SNS와 메타버스 등의 플랫폼은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함께 소비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만히 둬도 저절로 홍보가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물론 세계관 마케팅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겁니다. 소비자들은 '대충 만든' 세계관을 기가 막히게 알아봅니다. 그리고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사소한 디테일 하나가 몰입도를 높이기도, 산산조각내기도 합니다. 어설픈 접근으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광야'를 만들어 낼 겁니다. 누가 알겠어요. 언젠가는 빙그레우스와 춘식이, 진로 두꺼비가 한 자리에 모이는 '어벤저스'가 등장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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