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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신동주는 경영에 참여말라"

  • 2022.10.26(수) 15:05

신동주·신동빈, 경영 스타일 차이 '극명'
'우유부단 VS 과감함'…후계구도 결정 요소
재계 "신동빈 체제 확고…흔들릴 우려 없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신동주와 가족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말고 그룹 발전을 위해 협력해 달라

아버지는 20년 전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적시했습니다. 후계자는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장남의 경영 참여를 금지한다는 유지(遺旨)도 남겼습니다. 장남이 후계자가 아님을 명확히 한 겁니다. 두 아들의 희비는 엇갈렸습니다. 장남은 반발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반면 차남은 후계자로서 지위를 확실히 굳히게 됐습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 3월 4일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로 작성해 직접 날인하고 자신의 집무실 내 금고에 보관해뒀습니다. 유언장을 3개 국어로 작성했다는 것은 혹여 자신의 뜻이 왜곡될 수도 있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그만큼 자신의 뜻이 명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겁니다.

이런 아버지의 뜻은 20년 만인 2020년에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이는 오랜 기간 롯데그룹을 흔들었던 형제간의 다툼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됐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지난 202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년간 정신 건강 악화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장남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분쟁은 극에 달했습니다.

신동주 회장은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93세 아버지를 등에 업고 자신이 후계자임을 자처했습니다. 이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여러 증거들을 제시했습니다. 신 명예회장의 육성 녹음, 사과문 발표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당시 신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만큼 신동주 회장의 주장에는 늘 의문부호가 붙었습니다. 신동주 회장의 주장이 정말 신 명예회장의 의중이 맞느냐 여부는 형제간 다툼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이 건강했던 20년 전에 남긴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안갯속에 가려져있던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는 명확해졌습니다. 아버지는 20년 뒤의 일을 예견이나 한 듯 명확하게 후계 구도를 정리해뒀습니다. 더불어 장남의 경영 참여 금지까지 못 박았습니다. 이는 유언장이 작성됐던 20년 전에 이미 신동주 회장이 신 명예회장의 구상 속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사실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는 명확했습니다. 장남인 신동주 회장이 일본 롯데를,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는 것으로 정해져있었습니다. 신동주 회장은 1987년 일본 롯데상사에서, 신동빈 회장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두 형제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서로 발전적인 경쟁을 하며 그룹을 성장시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동주 회장은 자신이 담당했던 일본 롯데에서 '큰 사고'를 칩니다. 위법 소지가 있었던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신 명예회장에게 허위보고를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신동주 회장이 추진했던 각종 신사업들은 모두 좌초됐습니다. 일본 롯데에 큰 손해를 끼쳤음은 물론입니다. 이를 둘러싼 법정 다툼에서도 일본 법원은 신동주 회장의 패소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에서 착실하게 성과를 냈습니다. 과감한 M&A와 이를 통해 신사업에 적극 진출했습니다. 한동안 롯데그룹이 국내 M&A업계의 큰 손으로 불렸던 것도 모두 신동빈 회장의 과감한 전략 덕분이었습니다. 신동빈 회장은 유통과 식음료 중심이었던 롯데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화학을 추가해 그룹의 핵심으로 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롯데그룹은 재계 5위까지 올라섰습니다.

신 명예회장의 마음에서 장남인 신동주 회장이 배제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신동주 회장은 조용한 반면 의사결정에 취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신동빈 회장의 경우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행보가 눈에 띈다는 분석입니다. 형제의 성격 차이는 경영 스타일에 고스란히 반영됐고 후계를 결정해야 하는 신 명예회장의 입장에서는 차남에게 더욱 신뢰가 갔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생각입니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수장의 이런 차이는 임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 롯데가 지속해 성장한 반면 일본 롯데는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일본 롯데의 경영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일본 롯데 주주들이 과거 함께 일했던 신동주 회장이 아닌,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어준 이유입니다. 신동주 회장은 지금까지 총 8회에 걸쳐 일본 롯데 복귀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때마다 주주들이 모두 신동빈 회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최근의 행보에서도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신동주 회장은 한국 롯데의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현금 확보에 나섰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롯데는 물론 롯데그룹의 경영권에 대한 관심을 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호텔롯데를 매개로 여전히 이어져있습니다.

신동주 회장은 광윤사의 최대주주입니다. 광윤사는 호텔롯데의 대주주인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동주→광윤사→롯데홀딩스'로 이어지는 구조가 여전히 유효합니다. 따라서 신동주 회장은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한국 롯데보다는 일본 롯데를 공략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입니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회장과 달리 정체돼있는 일본 롯데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 4월 벤처투자사 '롯데벤처스 재팬'을 설립하고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놀로지 △푸드테크 등 미래 웰빙 분야를 중심으로 향후 3년간 75억엔 규모의 투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한국의 롯데벤처스가 성과를 내자 이를 일본에도 이식하려는 시도인 겁니다.

재계에서는 현재 '휴화산' 상태인 롯데의 경영권 분쟁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 체제'의 롯데그룹이라는 근간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그동안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보여준 성과의 차이가 극명한데다, 신동빈 회장이 한국과 일본 양국 주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신동빈 체제가 와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입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롯데의 경우 그동안 늘 형제간 다툼이라는 잠재적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었다"면서 "하지만 신동빈 회장 체제가 확고하게 정착된 만큼 이 리스크는 대부분 희석됐다고 본다. 게다가 신동주 회장에게 신동빈 회장의 확실한 대항마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신동주 회장의 우유부단한 경영 스타일이 스스로에게 자충수가 된 셈"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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