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인사이드 스토리]일요일에도 '대형마트'서 장 볼 권리

  • 2022.12.30(금) 06:50

연말 불거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논란
휴업일 배송·새벽 점포 배송 가능해질 듯
가장 중요한 평일 휴업 논의는 '지지부진'

올해도 이틀밖에 남지 않은, 그야말로 '연말'에 유통업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숙원 사업인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해제가 드디어 성사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의무휴업 규제는 소비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규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도 10년이나 발목을 잡아 온 의무휴업 규제가 완화되면 속절없이 밀리던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 전망입니다.  

의무휴업이 뭐길래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 도입된 제도입니다. 이전까지 대형마트들은 휴일 없이 주 7일 운영을 해 왔습니다. 24시간 운영을 하는 점포도 꽤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마트를 돌며 쇼핑을 하는 것도 꽤 색다른 느낌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되며 모든 대형마트는 월 2회 문을 닫게 됐습니다. 심야 영업 역시 금지됐습니다. 대형마트에 갈 소비자들을 전통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 규제는 시작과 동시에 많은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전통시장을 살리는 효과는 미미한 반면 소비자들의 피해는 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왔죠.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쿠팡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의 식품·생활용품 배송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또다른 논란거리를 불러옵니다. 대형마트가 쉬면 사람들이 시장에 가야 하는데,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기 시작한 겁니다. 대형마트는 또다른 핸디캡도 받았습니다. 의무휴업일에는 온라인 배송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를 '이커머스 활성화' 규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강력한 경쟁자인 대형마트의 손발을 묶어 놓으니 이커머스의 장보기 서비스는 고속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대표적인 서비스인 쿠팡의 '로켓프레시'는 작년에만 2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형마트업계  2위인 홈플러스의 온라인 매출이 연 1조원 수준이니, 그 격차를 가늠할 만합니다.

규제 완화 '첫 발' 내딛었다

의무휴업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는 연초부터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여름 '국민제안 톱 10'을 선정했는데 대형마트 규제 폐지가 1위를 차지한 거죠. 이후 어뷰징 논란이 나오며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대중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이슈입니다.

수차례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던 정부는 결국 해가 가기 전에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28일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과 '대·중소유통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도 나섭니다. 요지는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전면 허용입니다. 

SSG닷컴의 배송 차량./사진=비즈니스워치

법이 개정되면 SSG닷컴 등 대형마트의 온라인몰은 의무휴업일에도 배송을 할 수 있고 점포가 문을 닫는 새벽 시간에도 점포를 이용해 배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점포를 새벽배송 물류 기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온라인몰들이 활약할 수 있는 폭이 그만큼 넓어집니다. 품목 수도 늘릴 수 있고 새벽배송 가능 지역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형마트와 소비자들이 가장 바랐던 의무휴업일 폐지나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자율성 강화 방안을 협의'하는 수준으로, 다소 물러선 입장을 내놨습니다. 정부가 직접 평일 전환을 주장하기보다는 지자체와 대형마트 간 합의를 유도하겠다는 겁니다.

일요일에도 마트 갈 권리

전국 대형마트 중 평일에 의무휴업일을 소화하고 있는 곳은 20% 남짓입니다. 경기도와 울산 일부, 제주도 일부가 평일에 휴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구시도 평일 휴업을 결정했습니다. 지자체의 의지가 있다면 현행법으로도 평일 휴업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업계에서는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바뀌면 상당한 수준의 매출 회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마트의 경우 평일 매출이 평균 360억원 수준인 데 비해 주말 매출은 500억원이 넘습니다. 의무휴업일이 모두 평일로 바뀐다면 연 4000억원 가까운 매출이 늘어난다는 계산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최근의 가족구조 역시 소비자들이 평일 휴일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늦은 퇴근으로 인해 평일 저녁에 마트에 방문하는 게 어려운 가족들은 사실상 장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습니다. 토요일에 다른 일정으로 장을 보지 못했는데 일요일이 의무휴업일이라면 참 난처해집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그간 정부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대형마트를 향한 규제를 늘려왔습니다. 2001년에는 대형마트가 운영하던 셔틀버스를 없앴고 2010년에는 출점 제한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2012년에는 심야 영업을 금지하고 의무휴업일을 만들었죠. 하지만 이 과실은 전통시장이 아닌 쿠팡과 마켓컬리 등 이커머스가 가져갔습니다.

소비자들도 무조건 '규제 완화'를 외치는 건 아닙니다. 마트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고려해 의무휴업일 자체에는 찬성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전통시장 바로 앞에 '이마트'가 생기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대형마트에 가고 싶을 때는 대형마트에 가고, 전통시장에 가고 싶을 때는 전통시장에 가는 '쇼핑의 자유'입니다. 

소를 억지로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주제 역시 '대형마트에 못 가게 하는 방법'이나 '이커머스 영업 제한'이 아니라 '전통시장에 가고 싶게 하는 방법'이어야 할 겁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