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맥주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술 중 하나입니다. 시원하면서 짜릿하게 쏘는 탄산의 맛을 즐기는 분이 많을 겁니다.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음식편'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가장 즐기는 술 종류는 소주(52%)가 1위, 그리고 맥주(38%)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20년 전인 2004년 소주(65%)와 맥주(29%) 선호도 격차와 비교하면 현재 맥주의 인기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를 가지고 왔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음주를 피해야 하는 때 말이죠.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무알코올' 또는 '비알코올' 맥주입니다.
하지만 이 무알코올 맥주를 식당이나 주점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슈퍼나 편의점, 심지어 이커머스에서까지 접할 수 있는 무알코올 맥주를 식당과 주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무알코올 맥주는 술이 아니다?
답은 '주세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세법은 주세의 과세의 요건과 절차를 담고 있는 법입니다. 단순히 주류에 세금을 붙이는 것을 넘어 국민 보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보니 주류의 제조, 판매, 원료 수급 조절 등에 대한 내용까지 폭넓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세법에서는 주류를 주정(희석해 음용할 수 있는 에틸알코올) 그리고 알코올도 1도 이상의 음료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알코올 도수가 1% 이상이어야 주류로 분류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쯤에서 무알코올 맥주와 비알코올 맥주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무알코올 맥주는 말 그대로 알코올이 없는 맥주입니다. 물에 탄산, 맥아 엑기스 등을 넣은 것이기 때문에 알코올이 아예 들어있지 않습니다. 비알코올 맥주는 맥주에서 알코올을 빼낸 제품입니다. 알코올을 100% 제거할 수는 없어 소량의 알코올이 남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거의 0에 가깝긴 하지만 0은 아닙니다.
무알코올과 비알코올 맥주 모두 알코올 도수가 1% 미만이기 때문에 주세법상 주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주세법을 기준으로 보면 이 제품들은 '무알코올 음료'인 셈입니다. 그래서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 제품 표면의 정보에도 식품유형이 '탄산음료'로 적혀있습니다.
식당과 주점에 주류를 유통하는 종합 주류 도매사업자는 주세법에 따라 주류만 판매할 수 있습니다. 종합 주류 도매사업자 면허 요건에 주류 판매 전업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무알코올 맥주와 비알코올 맥주는 주류가 아니므로 주류도매상들은 식당과 주점에 납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무알코올 음료를 판매하고자 할 경우 식당주가 직접 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해 채워넣어야 합니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식당과 주점에서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겁니다.
주세법 바꿨지만...
이 규제가 조만간 완화됩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개정안에는 종합 주류 도매사업자가 주류제조자 등이 생산·판매하는 비알코올 음료 또는 무알코올 음료를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국무회의에서 논의를 마쳤기 때문에 대통령 재가를 받아 공포하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이달 중 일부 식당과 주점에서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를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류도매업자들 입장에서도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로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법 개정 후에도 식당과 주점에서의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 판매가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도 역시 주세와 관련돼 있는데요.
주류 가격에는 주세가 포함됩니다. 맥주의 주세는 주세법상 1㎘ 당 88만5700원입니다. 반면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는 주세법상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주세가 붙지 않습니다.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가 일반 맥주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에 여러 제반 비용을 붙여 도매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일반 맥주가 상대적으로 수익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도매업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더 저렴한 제품을 식당에 공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매상들이 제품을 납품할 때 사용하는 트럭의 자리, 식당과 주점에서 사용하는 냉장고의 자리는 한정돼 있습니다. 이 한정된 공간을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로 채운다면 그만큼 일반 맥주나 소주를 줄여야 합니다. 마진이나 효율성을 생각했을 때 더 수요가 크고 가격이 비싼 일반 주류 제품을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바로 '발포주'인데요. 발포주는 맥아 비율이 낮아 주세법상 맥주가 아닌 '기타 주류'로 분류됩니다. 기타 주류의 주세율은 30%이기 때문에 발포주의 판매 가격도 일반 맥주보다 낮습니다. 발포주는 주류 제품이기 때문에 도매업자들이 현재도 식당과 주점에 유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발포주 역시 식당과 주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죠.
그래도 최근 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수요가 입증된 만큼, 일부 주류 도매업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 판매에 나설지도 모릅니다. 조만간 식당에서도 무알코올 맥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