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병맥주의 상징이었던 '갈색병'이 사라지고 있다. 주요 맥주 제조사들이 핵심 제품에 투명한 유리병이나 컬러를 입힌 병을 도입하면서다. 맛 뿐만 아니라 맥주병의 디자인까지 고려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와 햇빛 등으로 맥주가 변질되는 것을 막는 주류 제조 기술의 발전이 합쳐진 덕분이다.
사라진 갈색병
오비맥주는 지난 2021년 '올 뉴 카스'를 출시하면서 유리병 제품에 기존 갈색 유리병 대신 투명한 유리병을 도입했다. 당시 오비맥주 측은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심플함과 투명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각적으로도 카스의 청량감과 신선함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고 투명병 도입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엔 롯데칠성이 '투명병 맥주'를 내놨다. 새 맥주 브랜드 '크러시'를 선보이며 빙산을 형상화한 투명 유리병을 도입했다. 올해에는 하이트진로가 기존 '테라'보다 칼로리를 낮춘 '테라 라이트'를 출시하며 투명병 맥주 라인업을 추가했다.
현재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칠성 등 맥주 3사의 주요 맥주 라인업 중 갈색병을 이용하고 있는 건 클라우드와 지금은 거의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하이트 뿐이다. 투명병을 사용하지 않는 맥주들도 갈색병보다는 '녹색병'을 선호하는 추세다. 2019년 출시된 테라가 녹색병을 도입해 단숨에 맥주 시장 2위로 올라선 뒤부터다. 이후 오비맥주의 세컨드 브랜드 '한맥'이 녹색병을 도입했다.
현재 오비맥주는 카스와 한맥에 각각 투명병과 녹색병을 적용했고 하이트진로는 테라에 녹색병, 테라 라이트에는 투명병, 켈리에는 호박색 병을 사용 중이다. 롯데칠성은 클라우드에 여전히 갈색병을 사용 중이고 크러시에는 투명병을 사용하고 있다.
썬크림 발랐나
이전까지 주류업계에서 '맥주=갈색병'은 공식으로 통했다. 햇빛을 오래 받으면 맥주에 들어 있는 홉 성분이 산화해 맛이 변하기 때문에 빛을 차단할 수 있는 갈색병을 사용했다. 하지만 수입맥주의 침공, 법 개편에 따른 수제맥주의 부흥 등으로 맥주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갈색병을 고집하던 맥주 업계도 생각을 바꾸게 됐다. 여기에 독자적인 디자인의 녹색병을 도입한 테라가 '대박'을 내자 다른 제조사들도 독자 디자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투명병 도입의 최대 난관이었던 햇빛 문제는 역발상으로 해결했다. 햇빛을 어떻게 막느냐가 아닌, 햇빛을 맞아도 문제가 없는 홉을 개발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홉 펠릿(홉을 압축해 만든 조각) 대신 분자구조를 변형해 빛에 강한 성질을 띠는 변성 홉 추출물 비중을 늘려 '햇빛에 강한 맥주'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투명병을 도입한 오비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의 테라 라이트, 롯데칠성의 크러시 모두 특수처리해 산화취에 강한 홉을 이용한다. 여기에 혹시모를 변질을 막기 위해 맥주를 보관하는 크레이트(플라스틱 박스) 위에 종이 덮개를 덮어 빛을 차단한다.
대부분의 맥주가 갈색병을 사용하면 장점도 있다. 당시 모든 맥주병이 동일한 컬러와 모양이었기에 서로 공병을 나눠 쓸 수 있었다. 이는 업계가 2009년 환경부 주도로 '공병 공용화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병 모양을 통일해 공병을 서로 교차해 쓰도록 했다. '오비라거' 맥주병에 '하이트' 로고가 새겨져 있었던 까닭이다.
이런 변화는 소주업계도 비슷하다. 기존에는 모두 같은 녹색병을 사용했지만 최근엔 하이트진로의 '진로'는 푸른색을 띠는 병을, 롯데칠성의 '새로'는 투명한 병을 사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주류를 구매할 때도 병 디자인이나 로고 등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각 브랜드들이 차별화를 위해 독특한 모양이나 색깔의 이형병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소주나 맥주가 맛에서 큰 차이를 내기 어려운 만큼 다른 부분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 같은 감성적인 부분이 구매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며 "투명병이나 녹색병 등 색다른 디자인이 차별화 요소가 되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