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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신라면 매운 맛' 제대로…일본인 줄세운 비결은

  • 2024.10.14(월) 12:00

[르포]농심, 일본 첫 팝업스토어 가보니
신라면 역사·DIY·시식 등 '신라면 세계' 구축
한국식 매운 라면 인기…열흘간 1.3만명 방문

농심 도쿄 신라면 팝업스토어 / 사진=정혜인 기자 hij@

'일본인은 매운 맛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자주 먹는 일식을 떠올려봐도 매운 음식은 찾기 어렵다.

라면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라면은 매운 맛이 기본이다. 반면 인스턴트 라면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대부분 맵지 않은 제품들이다. 심지어 일본 소비자들은 농심의 '튀김우동'마저 맵게 느낀다는 이야기가 한때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10일 방문한 농심의 일본 도쿄 신라면 팝업스토어 앞 좁은 골목에 젊은 일본인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에 무척 놀랐다. 이들은 대기표를 받고 이미 3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쪽에서는 간신히 대기표를 받은 한 일본인 여성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들어갈 수 있어"라고 소리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본인들도 '한국인의 매운 맛'에 푹 빠져 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힙한 한국, 즐거운 매운 맛

농심 일본 신라면 팝업스토어는 지난 5일부터 열흘간 도쿄 하라주쿠에서 열리고 있다. 농심이 일본에서 신라면 팝업스토어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라면은 1986년 출시돼 이미 38년의 역사를 지닌 장수 브랜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해 이제는 일본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실제로 농심의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신라면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는 약 63% 수준이다.

다만 브랜드 자체의 역사가 길다 보니 고객층의 연령대가 상승하는 추세다. 이에 농심은 주요 타깃층인 MZ세대와의 접점을 마련하는 한편 세대간 융합을 위해 이번 팝업스토어를 기획했다.

10일 오후 농심 신라면 도쿄 팝업스토어에서 한 방문객이 신라면 브랜드 제품들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지역으로 도쿄 하라주쿠를 택한 것도 이때문이다. 일본 Z세대의 성지로 유명한 하라주쿠는 일본에서 유행이 가장 빨리 생성되고 확산하는 곳이다. 농심은 고민 끝에 팝업스토어 장소도 하라주쿠의 일본식 전통 가옥으로 골랐다. Z세대가 모이는 핫플레이스 내 전통 가옥이라는 '의외성의 참신함'을 통해 신라면의 매력을 알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일본에서는 한국 문화가 '세련되고 힙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적인 이미지도 활용했다. 메인 사진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은 일본인 모델을 사용하고 한글을 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팝업스토어의 테마는 '매운 건 즐겁다! 신라면 월드'다. 농심은 이전까지 신라면의 특징인 매운 맛을 강조하기 위해 '우마카랏(うまからっ)', 즉 '맛있게 맵다'라는 말을 내세웠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단순히 매운 맛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새 브랜드 슬로건을 '매운 건 즐겁다'로 정했다. 신라면이 일본인의 일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서적 가치'를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이다.

다양한 요리로 변신

팝업스토어의 문을 열자 신라면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신세계(신라면 세계)'가 펼쳐졌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에게 신라면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작은 팸플릿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팸플릿의 가장 뒤쪽에는 '신라면 퀴즈'가 들어있다. 정답을 다 풀면 선물을 준다. 고객들이 퀴즈의 정답을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팝업스토어 안을 돌아보고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팝업스토어 내부는 크게 세 가지 구역으로 나뉜다.  첫번째 구역은 신라면의 개발 스토리와 역사, 매출, 수출국 등의 정보들을 알 수 있는 곳으로 꾸며졌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판매 중인 신라면 제품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아직 일본 출시를 기다리는 제품도 있었다. 태국에서 미쉐린 쉐프 '쩨파이(Jay Fai)'와 함께 출시한 인기 제품 '신라면 똠얌'이 대표적이다.

10일 오후 농심 신라면 도쿄 팝업스토어의 '나만의 신라면' 존에서 방문객들이 별첨 스프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두번째 구역은 신라면의 다양한 레시피를 소개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신라면을 얼마나 다양하고 자유롭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신라면에 치즈 등을 넣어 덜 맵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등 신라면을 다양하게 요리한 후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놀이 요소를 젊은 고객에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로제 신라면', '마시멜로 신라면' 등이 일본 SNS에서 인기가 높았던 레시피들도 벽에 붙은 QR코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팝업스토어의 하이라이트는 세 번째 구역인 '나만의 신라면' 존이었다. 우선 방문객은 커다란 신라면 컵라면 모양의 통 안에 들어있는 제비를 한개씩 뽑는다. 각 제비에는 추천 신라면 제품, 그리고 그와 궁합이 좋은 별첨 토핑이 마치 운세처럼 적혀있다. 직원에게 해당 제품과 토핑을 선물로 받은 후 15종의 별첨 후레이크가 놓여있는 테이블에 가서 4종류를 자유롭게 고른다. 농심은 이 코너를 위해 표고버섯, 대파, 고춧가루 등 평범한 재료부터 유자, 미역, 파래, 옥수수 등의 독특한 별첨 재료 파우치를 별도로 제작했다. 이렇게 고른 라면과 재료는 집으로 가지고 가 끓여먹을 수 있다.

10일 오후 농심 신라면 도쿄 팝업스토어 푸드트럭에서 방문객들이 신라면을 맛보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ij@

팝업스토어를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외부에서 신라면 푸드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손님이 두 번, 세번 방문하더라도 질리지 않도록 6종의 신라면을 매일, 3부로 나누어 제공한다. 평일에는 치즈 데이, 헬시 데이 등의 테마도 운영해 새로운 메뉴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주도록 기획했다. 이날은 기본 신라면 그리고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신라면 김치' 제품을 맛볼 수 있었다.

1만명 몰렸다

신라면 팝업스토어에 대한 일본 현지 고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팝업스토어 방문객 수는 오픈 당일인 5일부터 전날(9일)까지 누적 4800명이었다. 이날(10일) 방문객은 평일임에도 1500명을 넘어서며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방문객의 90% 이상은 일본 현지 고객이다. 특히 20대 여성의 비중이 크다. 일본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인 엑스(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신라면 팝업스토어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현지의 젊은 고객과 소통하겠다는 팝업스토어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이번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정영일 농심재팬 마케팅부문 겸 특수영업부문 부장은 "재미있고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점(특히 별첨 후레이크 선택 등), 무료라는 점 등이 기존 일본 내 식품기업의 팝업스토어와 달리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방문객 중 여성이 90%를 차지하는데 특히 2030 여성 비중이 전체 방문객의 80%"라고 설명했다.

10일 오후 6시께 농심 신라면 도쿄 팝업스토어 앞에서 방문객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실제로 이날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미나미 씨(28세)와 나츠미 씨(28세)도 즐거운 기색이 뚜렷했다. 미나미 씨는 가나가와 현에서, 나츠미 씨는 사이타마 현에서 팝업스토어를 방문하기 위해 하라주쿠를 찾았다. 이들은 평소에도 신라면, 신라면 김치, '신 볶음면' 등을 즐기는 신라면의 팬으로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팝업스토어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나미 씨는 "평소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신라면이 한국에서 온 제품이라 핫해서 팬이 됐다"고 말했다. 나츠미 씨는 "다양한 메뉴로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평소 신라면을 즐긴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 팝업스토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나만의 신라면 존'의 뽑기를 뽑았다. 나츠미 씨는 "뽑기에서 '신라면 블랙'과 당근의 조합이 나왔는데 이번 기회에 신라면 블랙을 처음 먹어보게 됐다"고 말했다.

농심 신라면 도쿄 팝업스토어 관련 인스타그램 게시물들. /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신라면 팝업스토어 방문객은 주말이 되면서 더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농심에 따르면 지난 12일에는 1854명, 13일에는 1798명이 방문하며 5일에서 13일까지 총 9일간 1만1328명이 신라면 팝업스토어를 찾았다. 당초 열흘간 1만1000명의 방문객이라는 목표를 하루 앞당겨 달성한 셈이다. 팝업스토어 마지막 날인 14일의 방문객을 포함하면 최종 누적 방문객 수는 1만3000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농심은 이 같은 팝업스토어를 내년 2월 삿포로에서도 이어갈 예정이다. 정 부장은 "삿포로 시내에 가설 스케이트링크를 만들어 신라면 스케이트장 이벤트를 열 계획"이라며 "삿포로 눈축제 방문객을 대상으로 무료 시식 이벤트를 벌여 신라면 브랜드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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