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이름의 중요성
한 가족이 아이를 갖게 되면 가장 열심히 고민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름 짓기'입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개명이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 혹은 태어나자마자 받는 이름을 평생 사용하게 되죠. 어떤 이름을 쓰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경우 이런 규칙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이름을 보면 생각보다 '대충' 지은 듯한 게 많은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일단 짓고 나서 나중에 의미를 부여하는 곳들도 허다합니다.
애플의 경우 당시 과일 식단을 고수하던 스티브 잡스가 사과 농장을 다녀와서는 떠올린 이름이라고 하죠.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창업자인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의 이름과 성을 떼 와 아디-다스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산 네이밍도 있습니다. 세계 커피 시장을 평정한 스타벅스(Starbucks)를 예로 들어 볼까요. 스타벅스라는 사명은 허먼 벨빌의 그 유명한 소설 '모비 딕(Moby dick)'에 등장하는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따 온 겁니다. 소설의 화자도(화자는 이스마엘입니다), 주인공 격인 캐릭터인 피쿼드 호의 선장 에이햅도 아닌 스타벅의 이름을 따 온 이유가 뭘까요. 스타벅이 커피 마니아였기 때문이라는데, 막상 스타벅은 소설 내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묘사조차 등장하지 않습니다.
미국 스타벅스 홈페이지에서는 사명을 모비 딕에서 따 왔다고 밝히며 '초기 커피 상인들의 항해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따르면 이 브랜드의 이름이 스타벅스가 아닌 '에이햅스'였어도 무방했을 겁니다. 물론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선원들을 모두 죽게 만든 에이햅보다는 소설 내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스타벅의 이름을 따는 게 더 그럴듯하긴 하죠. 개인적으로는, 선술집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세이렌 로고를 먼저 만든 다음에 항해와 관련된 소설을 찾아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들 뿐만이 아닙니다. 국내 유통·식품 기업들 역시 재미있는 유래를 가진 이름이 많습니다.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국내의 내로라할 유통·식품 기업들이 왜 이런 이름을 쓰게 됐는지 이유를 풀어 볼까 합니다. 이미 알고 계신 이야기도, 모르셨던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고민은 짧게
창립 15년 만에 대한민국의 유통·배송 시장의 룰을 완전히 바꿔놓은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쿠팡'입니다. 쿠팡은 2010년 소셜커머스로 시작했는데요. 소셜커머스는 지역 상점 할인 쿠폰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쿠폰 중개 서비스'입니다. 이쯤되면 쿠팡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죠. '쿠폰이 팡팡' 터진다는 뜻입니다.
최초의 소셜커머스인 그루폰도 '그룹+쿠폰'에서 이름을 따 왔었고요. '쿠차(쿠폰차트)'라는 쿠폰 소개 사이트도 있었죠. 이제 쿠팡은 더이상 쿠폰을 팔지 않지만 그 이름만큼은 남아서 소셜커머스 시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치킨업계 3대장인 BBQ, bhc, 교촌치킨 역시 쉽사리 어원을 추측하기 힘듭니다. BBQ는 당연히 직화구이 조리법인 '바비큐'의 약자인데요. 미국에서는 BBQ라고 하면 당연히 바비큐를 이야기하죠. 그런데 왜 '기름에 튀긴 닭 요리'를 파는 곳이 이름을 '직화구이(BBQ)'라고 지은 걸까요.
지금은 후라이드 치킨의 대명사인 BBQ지만 창업 초기엔 조금 달랐습니다. '후라이드·양념치킨은 흔해서 지겹다'는 게 BBQ의 캐치프레이즈였죠. 90년대 중반 가맹점 사업을 확장하면서 BBQ는 스모크치킨, 스테이크도 파는 치킨집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튀긴 치킨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했던 거죠. 이후 윤홍근 회장이 닭익는 마을 등 '닭 구이' 전문점을 연 걸 보면 직화구이에 대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bhc의 경우 1997년 경기도 고양시에 문을 연 '별하나치킨'이 시작입니다. 별하나치킨은 이듬해 튀김옷에 야채를 넣은 야채치킨을 내놔 인기를 끌고 1999년 그 유명한 '콜팝'을 선보이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규모가 커지며 사명을 별하나치킨의 약자인 bhc로 바꾸게 되죠.
교촌치킨은 1991년 경상북도 구미에서 시작된 브랜드인데요. 당시 '교촌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했습니다. 브랜드명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입니다. 1호점인 구미 송정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인동향교의 영향입니다. 실제로 향교가 있는 지역 인근엔 거의 반드시 '교촌' 혹은 '교동'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영어가 폼 나
한글명이었던 기업명을 영어로 바꾼 기업들도 많습니다. 단순히 영어 이름이 그럴 듯해서라기보다는, 한국어 발음을 어려워하는 외국인들에게 브랜드를 쉽게 각인시키기 위한 거겠죠. 아모레퍼시픽을 볼까요. 아모레+퍼시픽, 두 단어의 조합인데요.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이 만든 기업이 '태평양(퍼시픽)화학'이구요. 여기서 만든 화장품 브랜드가 바로 '아모레'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제품인 설화수 역시 아모레의 제품이었죠.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게 2002년부터니, 불과 20여년밖에 안 된 셈입니다.
주류업계로 눈을 돌려 보면 가장 먼저 오비맥주가 보입니다. 오비가 무슨 뜻일까요. 오비맥주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기린맥주가 세운 쇼와기린맥주입니다. 쇼와기린맥주는 광복 이후 동양맥주로 이름을 바꾸는데요. 이때 맥주 브랜드 이름을 'OB'로 바꿉니다. 대단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Oriental Brewery', 즉 동양맥주를 영어로 쓴 겁니다.
경쟁자인 하이트진로는 어떨까요.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하면서 이름을 합친 건데요. 하이트맥주의 경우 회사명이 먼저가 아니라 제품이 먼저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하이트맥주의 전신은 50대 이상인 분들껜 아직 익숙할 '크라운맥주'입니다. 오비맥주와 비슷하게, 일제강점이 아사히와 삿포로를 만들단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설립했고, 독립 이후 크라운맥주로 이름이 바뀌었죠.
크라운맥주는 당시 오비맥주에 밀려 만년 2위 신세였는데요. 1993년 150m 지하 암반수를 사용한 맥주 '하이트'를 출시합니다. 높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Height'를 음차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물' 이미지를 살렸죠.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이후 깨끗한 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하 암반수' 카드를 꺼낸 하이트는 결국 1996년 맥주업계 1위로 올라섰고 2005년 진로를 인수하며 국가대표 종합주류기업으로 거듭납니다.
이밖에도 재미있는, 혹은 '이게 뭐야' 싶은 유래를 가진 기업명은 많습니다. CU를 운영하는 BGF그룹의 BGF는 'Be Good Friends'의 약자라고 하는데요. 업계에선 모두 전신인 '보광훼미리마트'를 줄였다고 보죠. 하림은 공식적으로는 여름 하(夏)에 수풀 림(林)을 써서 '삶의 가치를 만들어 행복을 나누는 여름 숲'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김홍국 회장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점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떠신가요. 우리가 늘상 아무 생각 없이 불러 왔던 기업들의 이름에도 꽤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죠. 대충 지은 듯한 이름도, 공들여 지은 이름도 있습니다. 어떤 이름이든, 기업명을 파고들다 보면 그 기업의 시작과 성장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기업 이름이 있나요? 한 번 파고들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