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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섬유유연제는 왜 죽처럼 굳어 있을까

  • 2024.12.21(토) 13:00

[생활의 발견]고농축 섬유유연제 굳는 현상
겨울철 저온에 노출되면 점성 높아져
추운곳에 보관하지 말고 실내보관하거나 보온해야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Winter is coming

11월에도 20도를 훌쩍 넘는 이상 고온이 이어지다가, 첫눈이 말도 안 되게 온 뒤엔 어느덧 출근길에도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오지 않는 날씨가 됐습니다. 추운 날씨를 좋아하진 않지만, 또 겨울이 너무 안 춥기만 해도 이상할 것 같죠. 

겨울이 되면 가장 까다로워지는 살림 중 하나가 빨래입니다. 일단 옷이 두꺼워지니 빨랫감이 늘어나구요. 잘 마르지도 않습니다. 패딩이나 니트, 스웨터 등 세탁기에게 맡기기 까다로운 의류도 많아집니다. 이불이야 말할 것도 없죠. 강아지를 기르다보니 이불을 자주 빨게 되는데, 겨울 이불은 건조기에 넣어도 완전히 마르는 데 까지 한세월입니다.

사진=pexels

그래도, 잘 안 마르는 문제야 건조기가 있다면 해결이 되는 셈이고, 없다 해도 겨울은 건조해서 빨래가 금방 마르긴 합니다. 젖은 빨래가 가습기 역할을 하기도 하구요. 니트나 스웨터 등은 매일 빠는 것도 아니니 가끔 세탁소에 맡기면 되죠. 

저에게 겨울철 빨래 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섬유유연제였습니다. 평소엔 아무 문제 없이 잘 쓰다가 겨울이 되면 걸쭉하게 변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뜨거운 물에 풀어 써도 녹지 않고, 세탁기나 옷감에 달라붙기도 합니다. 가끔은 세탁기 호스에 엉겨 물이 안 내려가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하죠. 기업들은 왜 제품을 똑바로 못 만드는 건지, 향은 그대로인데 물에 잘 녹여서 쓰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섬유유연제의 비밀에 대해 알아 봅니다.

향 입히는 물

섬유유연제가 굳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섬유유연제의 효과와 성분부터 알아야 합니다. 가장 큰 효과는 유연제의 성분이 세탁물에 코팅되며 옷감을 부드럽게 해 주는 '섬유유연' 효과겠죠. 약산성을 띠어 세탁물에 남아 있는 약알칼리성 세제를 중화해 옷감이 손상되지 않게 하고요. 정전기 방지 효과도 있습니다. 향기를 첨가해 옷감에서 향기가 나게 하는 것도 중요한 효과입니다.

이런 기능을 위해 사용되는 성분이 양이온 계면활성제입니다. 섬유유연제에는 주로 4급 암모늄염 계열의 계면활성제가 사용되는데요. 대표적인 섬유유연제인 P&G의 다우니에 사용되는 '디에틸에스테르 디메틸 암모늄 클로라이드(DEEDMAC)'나 피죤에 들어가는 '에스터쿼터너리암모늄염' 등이 해당 성분입니다. 

대표 섬유유연제인 피죤(왼쪽)과 다우니(오른쪽)의 계면활성제 성분/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이 성분은 온도가 너무 낮을 경우나 지나치게 장기간 보관할 경우 물비누처럼 끈적해지거나 젤리처럼 굳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개의 섬유유연제를 사 두고 장기간 사용하거나 겨울철에 추운 베란다에 섬유유연제를 내놓을 경우 굳어버리게 되는 거죠. 

실제 다우니에는 주의사항으로 '보관 환경에 따라 제품의 점성이 변할 수 있으니 빠르게 사용하십시오'라는 문구와 '겨울에는 실내에서 보관'하라는 주의사항이 적혀있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겨울이 되면 섬유유연제를 모두 집 안으로 들여 놓고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걸쭉한 섬유유연제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미 굳은 섬유유연제는 단순히 수분이 증발한 게 아니라 계면활성제의 분자구조가 물과 결합해 변한 것이기 때문에 따뜻한 물에 풀어 쓰는 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이런 현상이 발생할 시 교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교환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향기 좋다고 막 쓰면 안 돼요

섬유유연제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섬유유연제를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다른 주의사항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린넨 소재의 옷을 세탁할 때 섬유유연제를 쓰는 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린넨은 아마라는 식물의 껍질 줄기를 이용해 만드는 식물성 섬유인데요. 식물인 만큼 산성에 약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드렸듯 대부분의 섬유유연제는 산성입니다. 섬유유연제가 식물 줄기 조직을 떨어져나가게 해 가루가 생기고 옷감이 약해집니다.

아웃도어 의류를 세탁할 때도 섬유유연제는 '금지'입니다. 아웃도어의 핵심 기능은 물을 튕겨내는 발수 코팅일 텐데요. 섬유유연제는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성 막(멤브레인)을 제거하는 성능도 있다고 합니다. 섬유유연제를 넣고 세탁한 기능성 의류는 더이상 기능성 의류가 아니게 되는 셈이죠. 물론 요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아웃도어용 섬유유연제'도 나옵니다.

쓰면 안 되는 옷감이 참 많은데, 수건에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앞서 섬유유연제가 옷감을 '코팅'한다고 말씀드렸죠. 수건은 수많은 올이 수분을 빨아들여 몸의 물기를 닦아주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수건의 올들이 코팅돼 물기를 덜 흡수하게 됩니다. 아무튼 부드러워지긴 했는데, 어째 닦아도 미끌거리고 물기가 잘 안 사라진다면 섬유유연제로 헹군 수건이겠죠. 

모든 빨래를 한 번에 돌리면 간편하다/사진=pexels

섬유유연제를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을까요? SNS나 블로그 등에는 섬유유연제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팁들이 많은데요. 그 중에도 섬유유연제를 물에 희석해 분무기에 넣고 의류나 빗에 뿌려 정전기를 방지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절대' 이렇게 사용하지 말라는 게 제조사의 입장입니다. 섬유유연제의 주성분이 계면활성제라고 말씀드렸죠. 이걸 분무기로 뿌리다가 사람이 흡입하면 폐섬유화를 일으킬 우려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섬유유연제에 주의사항으로 '분무기에 이용하지 말 것'이 적혀 있고 주의사항 중에도 굵은 글씨체로 따로 표시될 정도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빨래 한 번 하려면 이렇게나 신경쓸 게 많습니다.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구분해야 하고, 빨래할 옷의 옷감 종류도 구별해야 하죠. 집마다 다르겠지만 수건과 속옷, 겉옷, 양말 등 옷의 종류에 따라 4~5가지로 세탁물을 나누는 경우도 있죠. 그래도 이 추운 겨울에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하던 옛날보단 따뜻한 집 안에서 버튼 하나로 빨래가 마무리되는 지금이 행복한 걸까요. 퇴근하자마자 돌려둔 빨래를 꺼내며 드는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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