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의 기술이전 및 공동연구 파트너사로 중국계 기업들의 위상이 갈수록 무시못할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중국의 바이오 산업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도 한국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유망 물질을 선점하려는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바이오 분야 기술력이 고도화되면서 리가켐바이오 등 현지 파트너사를 통해 약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사례도 나온다. 이에 중국을 단순한 경쟁 상대로 볼 것이 아니라 전략적 R&D(연구개발) 파트너로 삼아 협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업계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기술거래 큰 손으로
4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계 제약바이오기업이 국내 바이오기업의 신약후보물질을 도입한 사례는 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6건 다음으로 일본(3건)과 함께 두 번째로 많은 수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중국계 바이오기업과 국내 기업간의 1조원대 딜(거래)이 터지기도 했다. 주인공은 아리바이오로 중국계 바이오기업(비공개)에 알츠하이머 치료 후보물질을 총 계약금 7억7000만달러(1조1200억원)에 이전했다.

중국계 제약바이오기업과 신약 공동개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올해 1월 현지 바이오기업인 라노바메디신과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지아이이노베이션의 면역항암제와 라노바메디신 ADC(항체약물접합체) 치료제 병용요법의 효과를 연구하는 내용이다. 라노바메디신은 머크, 아스트라제네카 등 빅파마(거대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한 경험이 있는 ADC 전문 개발사다.
중국계 바이오기업이 국내 기업과 기술이전, 공동개발 등의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이유는 중국 내 바이오산업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의약품 시장이다. 중국 의약품 시장은 올해 1250억달러(183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5.6%이며 오는 2029년 시장 규모는 무려 1558억달러(22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컸다. 중국 정부는 2010년 바이오산업을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지정한 이래 세제 혜택과 규제완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약 300억위안(6조원) 규모의 자금이 바이오제조 산업에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의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바이오 분야에서 매서운 기술 성장을 이루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2021년부터 글로벌 임상시험 시행 1위 국가로 우뚝 섰다. 최근 중국에서 개발된 후보물질을 찾는 빅파마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에서 성장한 국내 신약
중국의 바이오산업 경쟁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중국계 바이오기업에 약물을 이전한 이후 시판허가 등의 성과를 내는 국내 기업들의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계 기업과 협업을 전략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대형제약사인 포순제약은 현재 리가켐바이오로부터 도입한 혈액암 ADC 치료제인 'LCB14'의 중국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임상 1, 2상에서 포순제약은 경쟁약물인 '엔허투'보다 LCB14의 우수한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했다. 포순제약은 이를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게재했다.
이로 인해 LCB14의 약물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리가켐바이오는 빅파마에 LCB14를 재이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일환으로 리가켐바이오는 지난달 중국을 제외한 LCB14의 글로벌 권리를 가지고 있는 영국계 바이오기업인 익수다테라퓨틱스에 2500만달러(36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중국 파트너사가 약물의 임상과 허가를 진행해 현지 시판허가를 받은 사례도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알테오젠은 지난해 7월 치루제약을 통해 허셉틴 바이오시밀러의 중국 현지허가를 받았다. 같은 해 9월 대화제약은 파트너사인 하이흐 바이오파마를 거쳐 경구용 위암 치료제의 중국 내 시판허가를 따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바이오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대부분 추월했다. 어떤 분야에서 뒤처지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이에 중국을 미국과 같은 전략적 R&D 파트너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가진 기술력을 결합하면 한국에서 낼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