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바이오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는 튼튼한 기초과학을 빼놓을 수 없다. 기초과학 강화가 R&D(연구개발) 역량을 키워 중국 바이오산업을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린 것이다.
중국 정부가 인력과 자금 등을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바이오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 견제와 협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추월할까
8일 중국과학기술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23년 72만7800만건의 SCI(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급 논문을 출판했다. 전체 발행된 SCI급 논문의 약 30%를 차지하는 비중으로, 논문 발행 국가 기준으로 따져보면 중국은 세계 1위다. 중국의 SCI급 논문 수는 2018년 처음 미국을 넘어섰다.
단순히 양적인 측면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질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미국을 바짝 따라잡았다. 지난 2022년 중국은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발표한 연구경쟁력 지표 가운데 자연과학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평가에서는 종합분야에서 처음 미국을 앞지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지난해 12월 이러한 중국의 학술분야 경쟁력을 분석한 연구서에서 "중국 학술성과가 보여준 '수퍼 파워(초인적 능력)'가 과장이나 오해보다는 오히려 실제에 가까움을 확인했다"며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탄탄한 기초과학 역량은 기술 실용화로 이어지며 바이오산업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가 지난해 국가별 바이오산업 특허를 조사한 결과 중국의 점유율은 2021년 기준 14.2%로 나타났다. 10년 전과 비교해 약 4배 증가한 규모다. 미국(37.2%), 유럽연합(16.9%) 다음으로 세계 3위지만 가파른 성장률을 감안하면 곧 유럽을 넘어 2위로 떠오를 것이 유력하다.
중국은 글로벌 바이오 R&D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충북대학교와 차의과대학 연구진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총 6649건의 ADC(항체약물접합체) 특허를 분석한 연구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23.3%를 차지했다. 이는 미국(28.9%) 다음으로 높은 점유율로 세계 2위에 해당한다. 이 기간 한국의 점유율은 12.9%로 중국의 절반에 그친다.
견제와 협력 사이
중국의 기초연구 성과가 산업발전에 보탬이 되는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컸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정부는 R&D에 전년 대비 8.3% 증가한 3조6130억위안(726조원)을 투자했다. 이 중 기초과학 분야에는 같은 기간 10.5% 증가한 2497억위안(50조원)을 투입했다.
R&D 지출 규모는 아직 세계 1위인 미국(2023년 기준 1380조원)의 절반 수준이지만 증가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3년)간 중국의 R&D 지출 증가율은 8.9%로 미국(4.9%)를 크게 뛰어 넘어선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해외 정상급 석학 1000명을 유치하는 '천인계획', 국내 고급인력 1만명을 양성하는 '만인계획' 등을 정부 주도로 주도하며 산학계에 필요한 인재도 직접 수혈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급격한 성장에 기존 R&D 패권 국가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한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중국계 바이오기업이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위기감에서 이들 기업과 거래를 중단하는 내용의 생물보안법을 발의했다. 지난해 9월 이 법안은 하원 통과했지만 상원의 문턱을 못 넘으며 좌초됐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이해관계를 면밀히 따져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지만 최근 데이터를 살펴 보면 바이오 분야 기술력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들었다"며 "또한 중국은 그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의약품 시장으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R&D 협력 등 여러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