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날이 풀리면서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본격적으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입니다. 산책하는 어르신들부터 러닝크루로 달리는 젊은이들까지. 달리기는 심폐 기능은 물론 정신 건강을 단련하는 최고의 습관이라고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 가보면 '워킹화'와 '러닝화'를 구분지어 판매하고 있는데요. 이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운동화 한 켤레면 됐지, 다 엇비슷해보이는데 구분해 신어야 하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브랜드에선 모양이 비슷해서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을 때도 있고요. 그래서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겉은 비슷해 보여도 태생부터 달랐던 러닝화와 워킹화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어디를 지지하느냐
운동화는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신발입니다. 당연한 사실 아니냐고요? 러닝화와 워킹화는 발을 보호하기 위해 기능을 추가하면서 용도를 나눈 결과물입니다.
우선 러닝화는 단어 그대로 '달리기'를 위한 신발입니다. 빨리 달릴 때 족부에 가해지는 충격을 잘 흡수하고, 빠른 발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지지력'이 핵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격 흡수'입니다. 이를 위해 러닝화는 일반적으로 가벼우면서 두껍고 반발력이 좋은 유연한 형태의 밑창을 적용합니다. 그중에서도 신발의 인솔과 아웃솔 사이에 위치한 미드솔(중창)은 발을 잘 지지하고 충격을 잘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워킹화는 '걷기'에 최적화된 신발입니다. 걷는 동안 발 전체를 고르게 디디고 밀어내는 동작이 반복되기 때문에 장시간 착용해도 피로감을 줄여주는 '구조적 안정성'과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때문에 발 전체로 무게를 분산할 수 있도록 평평하고 얇은 밑창이 적용됩니다. 또 워킹화는 편안함과 지지력을 우선하기 때문에 보다 견고하고 무겁습니다.
또 쿠셔닝 위치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러닝화는 앞꿈치와 발꿈치에 유연성을 둬서 반사적으로 튕겨져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와 달리 워킹화는 발바닥과 발꿈치 부분에 쿠셔닝을 보강해 착용감을 좋게 만듭니다. 오랜 시간 걷더라도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뒤꿈치 지지와 아치 서포트 기능을 강화하고 밑창을 더 단단하게 설계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걸을 때와 달릴 때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다른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우리가 걸을 때 체중은 발뒤꿈치에서 시작해 발볼, 발가락까지 순차적으로 전달됩니다. 그래서 걸을 땐 체중이 발 전체에 균등하게 실립니다. 이와 달리 달릴 때는 걸을 때보다 발에 훨씬 큰 충격이 가해집니다. 특히 빠르게 달릴 땐 양 발이 동시에 땅에 닿는 경우가 적어 발이 받는 충격은 더 큽니다. 100m 기준 40~50㎞ 수준의 고속으로 달릴 때 발에 가해지는 충격은 체중의 2~4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구분했을까
그렇다면 '러닝화'의 개념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육상 선수들이 러닝화를 본격적으로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입니다. 1865년 영국의 윌리엄 존 맥밀런이 개발한 '스파이크화'는 현대 러닝화의 시초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무 밑창에 금속 스파이크를 단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당시 트랙이나 잔디밭에서 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고무 밑창은 기본적인 쿠셔닝과 접지력을 제공하고, 금속 스파이크는 흙이나 잔디에 파고들면서 미끄럼 방지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위가 아니라 부드러운 지면이 주 무대였기 때문에 이 조합이 매우 효과적이었죠. 스파이크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육상화(트랙 스파이크), 축구화(스터드), 야구화 등 다양한 스포츠 신발로 진화했습니다.

러닝화는 20세기 초반부터 브랜드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더해 진일보했습니다. 특히 독일의 아돌프 다슬러가 1920년대에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더 정교한 스파이크화를 만들기도 했고요. 아돌프 디슬러는 훗날 아디다스 창립자가 됐죠. 1936년 미국의 제시 오언스가 다슬러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베를린 올림픽 4관왕을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점차 선수들이 신기록을 세울 때 어떤 브랜드 제품을 신었느냐가 주목받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1954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렸던 100m 경기에서 독일의 하인즈 퓌더러(Heinz Fütterer)는 10.2초라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할 때 푸마 운동화를 신었는데요. 이후 1958년에도 하인즈 퓌더러는 푸마 러닝화를 신고 100m 4인 계주 경기에서 다시 한번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이는 푸마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발모양따라
1906년 용도를 넘어 개인의 족형을 고려한 운동화를 강점으로 내세운 브랜드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뉴발란스'입니다. 브랜드명에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죠. 뉴발란스는 1938년 캥거루 가죽을 소재로 한 브랜드 최초 러닝화를 선보인 후, 1960년엔 세계 최초로 멀티 위드스(다양한 발볼 사이즈)가 적용된 러닝화 '트랙스터'를 출시했습니다.
뉴발란스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아치의 정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는데요. 뉴발란스는 용도를 넘어 평발, 오목발 등 다양한 족형에 맞춘 제품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평발의 경우 '860', '1260' 등 'X60' 시리즈 및 '봉고' 러닝화 라인을, 오목발에게는 '880', '1080' 등 'X80' 시리즈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방향에 따라 평발, 오목발로 구분됩니다. 평발이라고 불리는 낮은 아치 발을 가진 사람은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충격이 제대로 분산되지 않아 발목이 안쪽으로 휜 '회내(回內·pronation)'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오목발이라고 불리는 높은 아치 발을 가진 사람은 발이 땅에 닿을 때 충격이 과도하게 바깥쪽으로 가해져 발목이 바깥으로 휜 '회외(回外·supination)'일 가능성이 높고요.
러닝화들의 기술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푸마는 혁신적인 쿠셔닝 기술을 지닌 '나이트로폼'을 개발했는데요. 기존 EVA(에틸렌비닐에세테이터)소재보다 우수한 쿠셔닝 효과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질소를 미드솔에 주입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통해 발이 지면에 닿을 때 충격과 피로도를 줄이고, 운동 중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편, 나이키는 러너들이 필요로 하는 편안함, 반응성, 지지력에 따라 제품을 직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쿠셔닝 기반 로드 러닝화 라인업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쿠셔닝에 중점을 둔 '보메로 라인'을 비롯해 반응성에 초점을 맞춘 '페가수스 라인', 지지력에 특화된 '스트럭처 라인' 등으로 정리한 건데요.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자신에게 적합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분류인 셈입니다.
업계에선 오래 걷거나 서 있는 시간이 많다면 안정감 있는 워킹화를, 빠르게 움직이거나 트레이닝을 즐긴다면 쿠셔닝과 반발력이 좋은 러닝화를 추천합니다. 러닝화 관련 내용을 다루다 보니 겨우내 미뤄둔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