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이번 [생활의 발견]은 지난주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우유를 많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더 선호하는 우유도 있으신가요?
시중에는 정말 많은 우유 제품이 존재합니다. 같은 흰 우유 제품이라도 유(乳)업체마다 조금씩 맛이나 성분이 다르죠. 초코, 딸기 등 맛을 달리한 제품도 정말 많습니다. 보통 맛에 따라, 성분에 따라, 때로는 제조사에 따라 우유를 선택하실텐데요.
'패키지'를 기준으로 우유를 고르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커피 우유는 삼각팩에 담긴 제품이 더 맛있다고 느끼는 경우라든지, 바나나 우유는 뚱뚱한 단지 모양 패키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저는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형 패키지에 들어있는 흰 우유를 좋아합니다.
물론 우유는 일반적으로 네모난 형태의 종이팩에 담겨 판매됩니다. 우유 하면 떠올리는 가장 흔한 형태죠. 하지만 우유가 처음부터 종이팩에 담겨 유통된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첫 대량생산 우유는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었습니다.
부유층의 전유물
우리나라 우유 생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7년 설립된 경성우유동업조합, 즉 현재의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처음으로 서울 정동에 우유공장을 짓고 우유를 독점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유는 1홉 용량의 유리병에 담겨 판매됐습니다. 1홉은 180㎖를 아주 조금 넘는 양입니다.
이 때 우리나라에는 유리병을 만드는 시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유리병을 수입해 사용했다고 하네요. 병값이 비싸 부유층들만 우유를 마실 수 있었던 시절이었죠. 해방 후인 1948년부터는 2홉 짜리 유리병도 사용하면서 용량이 다양화 됐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특히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병 수입이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서울우유는 이 때 미군부대에서 나온 맥주병을 재활용해 우유를 담아 팔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유리병 생산이 가능해진 건 1962년입니다. 1960년대는 정부가 낙농 장려 정책을 펼치면서 남양유업(1964년), 매일유업(1969년, 당시 한국낙농가공), hy(1969년, 당시 한국야쿠르트유업) 등 여러 유가공 업체들이 설립된 시기이기도 하죠. 그래서 우유병에 담긴 우유 제품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당시에는 우유병을 재활용 했습니다. 다 마신 우유병을 배달원이 수거해가면 업체에서 세척, 살균해 재활용 하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각 가정에서 우유병을 재사용 하는 경우가 많아 공병 회수율이 높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병 회수가 안 되니 우유병 생산 비용이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유리병은 유통 과정 중 파손될 위험이 크고 세척이나 소독 과정도 번거로웠죠.
더 싸게, 더 편리하게
그래서 1970년대부터는 다양한 우유 패키지들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우유는 1972년 '삼각포리'라고 불리는 폴리에틸렌 재질의 삼각 포장용기를 처음으로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삼각포리는 유리병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파손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서울우유의 인기 삼각 커피우유인 '커피포리'가 바로 이 삼각포리에 담겨 있습니다. 이 제품은 1974년 출시돼 현재도 커피우유 대표 제품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울우유의 커피포리와 함께 지금도 사랑 받는 가공유 제품 역시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바로 '뚱바'로 불리는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입니다. 빙그레는 1974년 당시 '바나나 우유'를 달항아리 형태의 단지형 폴리스티렌 용기에 담아 선보였습니다. 이 단지형 용기는 위아래를 따로 만든 후 합쳐야 하는데요. 빙그레는 여기에 사용할 신기술을 찾아 미국까지 건너갔다고 하네요.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지난해 출시 50주년을 맞았는데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종이팩인 '카톤팩'은 1977년 서주우유가 국내에 처음 도입했습니다. 같은해 서울우유, 매일유업 등도 카톤팩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크게 대중화됐습니다. 카톤팩은 종이의 양면에 폴리에틸렌 수지를 바른 직육면체 형태의 용기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각 지붕이 달린 '게이블 탑' 형태의 카톤팩이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대부분의 우유 용기는 카톤팩인데요. 가볍고 생산 비용이 낮은데다 폴리에틸렌 수지만 벗겨내면 재활용까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우유에 흔히 쓰이는 종이팩으로는 카톤팩 외에도 '테트라팩'이 있습니다. 흔히 멸균우유 등에 쓰이는 멸균팩입니다. 이 패키지를 처음 개발한 다국적 회사의 이름을 따 테트라팩이라고 부릅니다. 종이에 폴리에틸렌 외에도 알루미늄을 덧대 1개월 이상 내용물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테트라팩은 초기에 삼각포리처럼 삼각형 형태였는데요. 1972년 남양유업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테트라팩 제품 '남양밀크'도 삼각형 형태였다고 합니다. 매일유업도 1973년 테트라팩 삼각포장 우유를 내놨는데요. 매일유업은 이듬해인 1974년 현재 가장 대중적인 벽돌형 테트라팩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우유팩은 더 사용하기 편하게, 더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1970년대에 도입된 기본 패키지들이 현재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패키지들이 그만큼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뜻이겠죠. 만약 오늘 우유를 드신다면 그 패키지가 50년 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