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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레어'로 먹어도 되나요

  • 2024.11.24(일) 13:00

[생활의 발견]삼겹살 '익힘' 이야기
덜 익혀먹지 말라는 건 '갈고리촌충' 때문
90년대 이후 국내 발생 사례 없어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K-바비큐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오면 꼭 찾는 음식이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치킨'이죠. 어느나라에나 있을 법한 닭고기 튀김이지만 교촌의 간장치킨이나 bhc 뿌링클, BBQ 황올치 같은 메뉴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치킨"이라며 호평합니다. 

또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담백한 '닭한마리'가 최근 인기라고 하고요. 한 때는 식감 때문에 '불호' 음식으로 여겼던 '떡볶이'도 이제는 K-드라마를 타고 한국 관광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잡았습니다. 불닭볶음면으로 시작해 이제는 일본 라멘의 아성을 위협하는 '라면' 역시 당당한 국가대표 음식입니다.

삼겹살/사진=아이클릭아트

그리고 이제는 불고기와 갈비찜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고기 요리로 자리잡고 있는 '삼겹살'이 있습니다. 생고기를 잘라 불에 굽는 단순한 요리인 만큼 외국에도 삼겹살 같은 요리가 흔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삼겹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도 맛을 보고 나면 "왜 지금까지 이런 고기를 몰랐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삼겹살을 굽는 걸 보면서 외국인들이 가끔 의아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고기를 왜 이렇게 '웰던'으로 굽냐는 건데요. 청경채만큼이나 고기도 '익힘 정도'가 중요한데, 너무 오래 구우면 맛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딱딱한 삼겹살이 싫어서 적당히 익은 조각을 골라집으면 "덜 익은 거 먹으면 큰일난다"는 말을 듣곤 했죠. 소고기는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레어(Rare)'로 먹는데 왜 삼겹살은 바싹 익혀 먹으라는 걸까요. [생활의 발견]에서 정리해 드립니다.

기생충

흔히들 돼지고기에는 기생충이 있어 덜 익혀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고 합니다. 소에는 없고 돼지엔 있는 이 기생충은 뭘 얘기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를 먹고 감염된다고 알려진 기생충은 갈고리촌충(유구조충)의 유충인 '낭미충'입니다. 갈고리촌충은 돼지를 중간 숙주로, 인간을 최종 숙주로 삼는 기생충인데요. 인간의 장 속에서 성충으로 성장해 알을 낳고, 돼지가 그 알을 먹으면 장에서 유충으로 기생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예전엔 돼지를 뒷간 옆에서 기르곤 했죠. '똥돼지'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고요. 갈고리촌충에 감염된 인간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는 몸 속에 유충을 품게 되고, 이런 돼지를 덜 익혀서 먹으면 인간이 감염되는 겁니다. 실제로 예전엔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고 기생충에 감염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제주 재래 흑돼지. 똥을 먹이지는 않는다/사진=제주도 축산 진흥원

하지만 요즘 변을 먹여가며 돼지를 기르는 곳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이 기생충은 인간과 돼지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이 순환이 끊어지면 번식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부터 농가들이 돼지에 사료를 먹이는 방식으로 전환했는데요. 돼지고기 기생충 감염 소식도 이 때 함께 사라집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 탓에 기생충에 감염 사례가 보고된 건 1989년이 마지막입니다. 사료 급여와 함께 기생충 감염 소식이 사라진 겁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덜 익은 돼지고기를 먹고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 이야기는 대부분 해외 사례고요. 그나마도 대부분 10년 이상 잠복기를 거쳤다가 발현된 사례라고 합니다.

익힘 정도가 다르다

물론 억지로 덜 익혀 먹으란 얘긴 아닙니다. 취향에 따라 바삭하게 익힌 삼겹살을 좋아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삼겹살은 보통 지방 비율이 30~50%가량 되는, 지방 함량이 높은 부위죠. 그런 만큼 강한 불에 오래 익히면 튀겨낸 듯한 바삭한 식감이 됩니다. 

반면 품질이 좋은 삼겹살이라면 적당히 익힐 경우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가 강해집니다. 최근 삼겹살 전문점들은 고기를 1㎝ 이상으로 두껍게 썰어 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삼겹살은 너무 오래 익히면 질겨서 먹기가 불편하죠. 겉은 바싹 익히되 속은 적당히 선홍빛이 돌 때 먹으면 '겉바속촉'의 정석입니다. 물론 얇은 삼겹살도 살짝 익혀서 부드럽게 먹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취향은 이쪽에 가깝습니다.

2010년대 이후 삼겹살 트렌드는 '더 두껍게'다. /사진=아이클릭아트

그렇다고 소고기처럼 '레어'로 먹으면 곤란합니다. 마찬가지로 높은 지방 함량 때문입니다. 지방이 충분히 녹지 않은 상태에서 먹으면 식감도 떨어지고 맛도 활성화되지 않아 밋밋합니다. 소고기의 경우에도 단백질 함량이 높은 안심 등의 부위를 쓰면 온기만 전달된 레어 상태에서도 부드럽고 맛있지만 마블링이 강한 한우 등심같은 경우엔 조금 더 익혀야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삼겹살의 오해를 하나 풀었으니, 또다른 오해(?)도 풀고 가 볼까 합니다. 삼겹살이 중금속이나 미세먼지를 씻어준다고 해서 미세먼지가 심한 날 삼겹살을 찾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돼지고기가 체내 중금속을 배출해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목에 칼칼하게 달라붙은 미세먼지를 돼지기름이 씻어내 줄 것 같은 느낌도 들죠.

하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효과가 없습니다. 광산이나 가죽공장 등에서 일하는, 체내 중금속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일반인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고요. 오히려 삼겹살을 굽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증기에 함유된 미세먼지를 흡입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차라리 물을 마시라는 게 많은 의사·학자들의 조언입니다. 삼겹살을 먹어야 할 핑계가 하나 사라진 느낌이지만 맛있는 걸 먹는데 구구절절한 이유가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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