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음식 중 하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스팸' 김치찌개였습니다. 어머니가 이 요리를 하실 때 곁에서 기웃거리면 어머니는 방금 작게 잘라낸 스팸 조각 하나를 입에 넣어주시곤 했는데요. 입 안 가득 차는 짭쪼름하면서도 고소한 스팸의 맛이 참 좋았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스팸 요리를 즐기는데요. 구워서 흰 쌀밥에 올려만 먹어도 맛있고 찌개나 볶음밥을 만들 때도 유용합니다. 스팸 같은 여러 캔햄이 명절마다 선물로 들어오다보니 찬장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쓰기도 좋죠. 지금도 캔햄 요리를 할 때마다 칼질을 하다 말고 작은 햄 조각을 입에 넣어보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캔햄도 '고기'인데 이렇게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어도 되는 걸까요?
스팸이냐 런천미트냐
캔햄은 분쇄육과 양념을 섞어 캔에 담아 판매하는 상품을 말합니다. 제조 방식 때문에 프레스햄, 통조림햄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는데요. CJ제일제당이 제조, 판매하는 스팸 브랜드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스팸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기도 합니다.
캔햄은 '런천미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런천미트(luncheon meat)는 원래 차갑게 해 썰어낸 후 샌드위치나 샐러드에 넣어먹는 고기류를 말하는 표현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스팸이 등장하면서 영미권에서는 캔햄을 일컫는 용어로 확장됐다고 하네요.
결국 캔햄, 프레스햄, 통조림햄, 런천미트는 모두 같은 제품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런천미트라는 용어를 프리미엄 캔햄과 구분 지어 사용합니다. 프리미엄 캔햄은 돼지고기만 사용하고 있고요. 돈육 함량을 높여 고기의 맛을 풍부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CJ제일제당의 스팸, 동원F&B의 '리챔', 롯데웰푸드의 '로스팜' 등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런천미트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섞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입니다. 대부분 별도 브랜드 없이 제조사 이름에 런천미트를 붙인 상품명르 사용합니다. CJ제일제당의 '백설런천미트', 동원F&B의 '동원 런천미트', 롯데웰푸드의 '롯데햄 런천미트'처럼요.
완벽한 멸균
이런 캔햄들은 모두 레토르트 멸균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별도의 조리 없이 생으로 먹어도 됩니다. 레토르트는 이미 조리한 식품을 용기에 넣어 밀봉한 후 고온, 고압으로 가열해 살균하는 멸균 공정을 말합니다. 레토르트 멸균을 거치면 상온에서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식품업계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1809년 프랑스에서 음식을 병에 담은 후 코르크로 막아 가열 조리하는 멸균 방식이 개발됐는데요. 이것이 멸균 통조림의 시초이자 레토르트의 시초로 불립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레토르트 파우치가 개발되면서 현재는 '레토르트 식품' 하면 파우치에 담긴 식품을 뜻하는데요. 캔햄과 같은 통조림 역시 레토르트 멸균 공법을 쓰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레토르트 식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캔햄은 우선 분쇄육과 양념을 혼합하는 과정을 거친 후 세척된 캔에 담깁니다. 이 캔을 밀봉한 후 레토르트 설비에 넣어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열을 가해 멸균 상태로 만듭니다.
국내 식품의 기준 및 규격(식품공전)에서는 제품의 중심온도가 120°C 이상인 상태에서 4분 이상 열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120°C는 중심온도이기 때문에 다른 곳의 온도는 훨씬 더 높은 온도까지 상승하기 때문에 아주 높은 온도에서 균이나 미생물이 완전히 박멸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캔햄은 생으로 먹어도 됩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햄의 첨가물을 씻어내려면 익혀 먹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뜨거운 물에 데치기만 해도 첨가물 대부분이 사라진다는 주장인데요. 이 주장에서 제거하려고 하는 첨가물은 바로 '아질산나트륨'입니다.
보존제가 문제다?
아질산나트륨(아질산염·아질산소듐)은 육가공품의 보존기간을 연장하는 역할을 하는 보존제입니다. 또 육가공품 특유의 붉은 색을 내주는 색소이기도 합니다. 햄, 소시지와 같은 식육가공품 외에 명란젓, 연어젓, 어육소시지에도 사용되죠.
아질산나트륨은 인체 발암 추정 물질로 분류되는 물질입니다. 아질산나트륨 자체의 암 유발 가능성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하는데요. 대신 아질산나트륨이 육단백질인 아민과 결합했을 때 생기는 니트로사민은 암 발병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아질산나트륨을 인체 발암 추정 물질(2A군)로 분류하기도 했죠.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독성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아질산나트륨의 경구 반수치사량은 85㎎/㎏입니다. 경구 반수치사량은 동물실험에서 물질을 입으로 섭취시켰을 때 실험군의 50%가 사망하는 용량을 말합니다. 몸무게 70㎏의 사람들이 아질산나트륨 약 6g을 입으로 섭취했을 때 절반은 사망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렇게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쉽게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으니 매우 치명적인 물질인 건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질산나트륨을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수준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국내의 식품 내 아질산나트륨 허용 기준은 아주 낮기 때문인데요. 식품공전에서는 식육가공품의 경우 1㎏ 당 0.07g까지만 아질산나트륨을 쓸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캔햄 200g이라면 0.014g까지만 허용되는 건데요. 캔햄을 통해 경구 반수치사량 수준까지 아질산나트륨을 섭취하려면 400개가 넘는 캔햄을 먹어야 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현재 판매 중인 캔햄 다수는 이 허용 기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아주 소량의 아질산나트륨만 쓰고 있다고 합니다.
니트로사민 생성 억제를 위해 제품에 비타민A를 첨가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뜨거운 물로 캔햄을 데친다고 해서 아질산나트륨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하네요.
이렇게 생으로 먹어도 되는 캔햄이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구워서 먹는 게 제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저녁 흰 쌀밥에 구운 스팸을 올려 먹어보는 건 어떠실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