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셰프는 접시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철학과 재료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수만 번의 칼질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죠. [셰프의 Pick]은 그들의 이런 노력을 담아냅니다. 국내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담긴 철학 한 조각을 음미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최고의 셰프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맛 보실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편집자]
호텔 다이닝의 진정한 경쟁력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축적된 신뢰에서 나온다. 화려한 첫인상을 남기는 곳은 많지만, 다시 찾고 싶은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곳은 드물다. 특히 비즈니스가 아닌 여행으로 찾은 이들에게 재방문을 이끌어내는 힘은 신뢰가 기반이다. 호텔 다이닝에서 신뢰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자산인 이유다.
외국인 투숙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삼겹살 쌈을 즐기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700명의 대규모 연회에서도 갓 구운 스테이크의 육즙이 완벽하게 살아있는 곳.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은 바로 그 '다시 찾게 만드는 경험'의 가치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이 미식의 중심에는 호텔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13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하며 성장을 일궈온 인현기 부총주방장이 있다. 정육부터 콜드 키친, 연회 총괄까지 주방의 전 파트를 섭렵한 그를 만나 호텔 다이닝을 이끄는 그의 철학과 그만의 비결을 들어봤다.
조식에 등장한 삼겹살 쌈
인 부총주방장이 총괄하는 공간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곳은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타볼로 24'다. '타볼로'는 이탈리아어로 식탁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24시간 셰프가 상주하는 주방을 중심으로 뷔페와 룸서비스까지 운영된다.
이곳의 차별점은 정통 한식이다. 외국인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날도 적지 않지만, 오히려 한국적인 메뉴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겁다. 그는 "메리어트는 기본적으로 로컬푸드를 고객에게 소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외국인 고객에게 한국 음식을 추천하고 이해도가 높아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식 라이브 스테이션이다. 타볼로 24는 조식 뷔페에서 삼겹살을 현장에서 직접 구워 쌈과 함께 제공한다. 인 부총주방장은 "뷔페 조식에서 삼겹살을 라이브로 구워 제공하는 것은 처음 시도한 방식"이라면서 "아침인데도 쌈과 함께 삼겹살을 즐기는 고객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곤드레비빔밥과 불고기 역시 외국인 고객 선호도가 높은 메뉴다. 김치도 정통 방식 그대로 제공한다. 다만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양이나 강도를 조절해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그는 "장(醬)에 기반한 음식이기 때문에 양만 잘 조절하면 충분히 받아들여진다"며 "양식 기법에 한식의 색깔을 적절히 입히면 자연스럽게 한식이 된다"고 설명했다.
호텔 내 또 다른 축은 뉴욕 정통 스테이크하우스 'BLT 스테이크'다. 특히 이곳에서는 한우를 활용한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단순히 1++ 등급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별한 한우만 드라이에이징에 활용한다. 그는 "한우 채끝은 응축된 깊은 맛이 강점"이라면서 "웰던으로 익혀도 부드러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미국산 소고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재방문을 이끄는 힘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연회 역시 그가 공을 들이는 영역이다. 최대 700명 규모 행사까지 소화하지만, 대규모 운영에서도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인 부총주방장은 "연회장에서는 대개 고기와 가니쉬를 한꺼번에 준비한 뒤 소스만 뿌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우리는 에피타이저, 수프, 메인, 가니쉬를 하나하나 라이브에 가깝게 담아낸다"고 말했다.
이어 "고기도 파이어 타이밍에 맞춰 오븐에서 꺼내고 충분한 레스팅을 거쳐 낸다"면서 "연회장에서도 마지막까지 접시의 완성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서비스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른 응대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예전에는 다소 형식적인 서비스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고객과 훨씬 가깝게 소통한다"며 "셰프들이 직접 고객 성향을 파악하고, 방문 목적이나 선호에 맞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숫자로도 이어졌다. 현재 연회와 레스토랑 매출 비중은 비슷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재방문 고객의 증가다. 인 부총주방장은 "과거에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찾는 고객이 많았다면 지금은 재방문 고객이 확실히 늘었다"면서 "이번 주 객실 점유율도 90% 이상인데, 다시 찾는 고객 비중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치열한 시간들이 만든 감각
이 같은 변화의 밑바탕에는 그가 호텔 오픈 초기 겪었던 치열한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미쉐린 스타 출신 이탈리아 셰프와 함께 일하며 주방 시스템 전반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호텔이 막 문을 연 시기였고 시스템도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메뉴들을 계속 시도했다"며 "연회장에서 파인다이닝 수준의 음식을 200~300명 규모로 맞춰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음식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생활이 2~3년 이어졌다"면서 "당시에는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자양분이었다"며 "그 과정을 거치며 음식의 색과 구조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훨씬 단단해졌다"고 덧붙였다.
그의 요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의도된 대비'다. 익숙한 맛 위에 예상하지 못한 향과 산미를 얹어 한 번 더 기억에 남게 만드는 방식이다. 인 부총주방장은 "제 요리는 음식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티 나지 않는 산미가 있다"면서 "집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향과 여운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당근 요리에는 캐러웨이 시드를 아주 미세하게 넣어 향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도록 만든다. 동남아 식재료도 자주 활용한다. 단순히 이국적인 맛을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음식에 새로운 결을 입히기 위해서다.
그는 "타마린드처럼 식초와는 결이 다른 산미를 넣으면 익숙한 요리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며 "고객이 '이건 뭘까' 궁금해하면서도 결국 다시 먹고 싶어지는 지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입으로 승부
인 부총주방장의 시그니처는 단연 '카나페'다. 그의 카나페는 단순한 핑거푸드가 아니다. 작은 한 입 안에 구조와 흐름, 여운까지 담아내는 압축된 요리다.
카나페의 출발은 바닥이 되는 베이스다. 슈, 크래커, 볼로방 등 어떤 베이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체 구조가 달라진다. 그 위에 가금류, 비프, 포크, 랍스터나 흰살생선 같은 해산물, 제철 채소 가운데 주재료를 정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소스와 식감의 대비를 하나씩 쌓아 올린다. 마지막에는 캐비어처럼 맛의 중심을 잡아주는 포인트를 더해 한 조각을 완성한다.
보통 카나페는 6종으로 구성한다. 비건, 피시, 가금류, 치즈, 비프, 야채로 영역을 나눈 뒤 각기 다른 성격을 부여한다. 단순히 종류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바삭함이 먼저 오고, 어떤 것은 부드러움 뒤에 산미가 따라온다. 또 어떤 것은 고소함 끝에 은은한 훈연향이 남도록 설계한다.
인 부총주방장은 "한 입 안에 많은 맛이 숨어 있어야 한다"며 "기본에 충실하되 랍스터를 쓰면 첫맛에서 랍스터가 분명하게 느껴져야 하고, 먹고 난 뒤에는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정은 오히려 재료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이다. 한 조각 안에 너무 많은 요소를 넣으면 오히려 맛의 중심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스의 농도, 재료의 온도, 입에 닿는 첫 식감, 씹을수록 퍼지는 향까지 반복해서 조정한다.
그는 "하나를 만드는 데 이틀, 사흘이 걸릴 때도 있다"면서 "불현듯 떠오를 때도 있지만 며칠을 붙잡고 있어도 단 하나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끓이고, 조리고, 훈연하고, 굽고, 때로는 분자요리 기법까지 활용한다"면서 "하나의 카나페 안에서도 색깔과 텍스처, 맛이 모두 달라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런 고민이 쌓여 지금까지 만든 카나페만 수백 가지에 이른다. 호텔 애프터눈티는 물론 럭셔리 브랜드의 외부 케이터링에서도 그의 카나페가 활용된다. 행사에 따라서는 한 피스 가격이 1만5000원에서 2만원에 이를 정도다.
인 부총주방장은 "지금까지 수백 개의 카나페를 만들었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그것이 제가 고수하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작은 한 조각이지만 그 안에 셰프의 생각과 기술, 호텔의 수준이 모두 드러난다"면서 "그래서 지금도 매일 새로운 카나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대문과 어울리는 셰프
최근 그가 가장 깊이 파고드는 영역은 '발효'와 '장'이다. 인 부총주방장은 "한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셰프마다 답이 다르지만 결국 모두가 납득하는 것은 장"이라며 "간장, 된장, 고추장이 한식의 가장 본질적인 언어"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장을 찾아다닌다. 강화도의 재래식 된장부터 명인의 장까지 경험해보고 이를 어떻게 양식에 녹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최근에는 프랑스식 피시 소스에 된장을 접목하는 실험도 구상 중이다. 그는 "샬롯과 포도 향을 살린 소스에 된장을 아주 약하게 더하면 예상보다 깊은 감칠맛이 나온다"면서 "이번 와인 디너에서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 부총주방장은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동대문과 어울리는 셰프'라는 표현을 꺼냈다. 그는 "전공은 양식이지만 한국에서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한국 식재료와 장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양식의 비중은 유지하되 팔도의 식재료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셰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흥인지문과 맞닿은 이 호텔에서 한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 "동대문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한국적 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10년 뒤 어떤 셰프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만든 음식이 '동대문에 가면 꼭 다시 생각나는 맛'으로 남았으면 합니다."라고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