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외환 통합은행장 레이스가 생각보다는 싱겁게 끝날지도 모르겠다. 하나은행이 새로운 행장을 세우는 대신 당분간 대행체제로 운영되면서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통합은행장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지난 8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힌 때부터 김한조 행장은 통합행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어차피 김종준 행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의 징계를 받아 더 이상의 연임도 불가능하다.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김한조 행장을 통합은행장으로 앉히는 것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나 통합은행의 여러 상황을 생각할 때 적절하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하나금융 내부에선 김종준 행장이 오늘(3일) 퇴임함에 따라 새 행장을 선임해, 김한조 행장과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옛 서울은행 출신인 함영주 현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부행장과 김병호 마케팅·글로벌사업그룹 부행장 등이 통합은행장 하마평에 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 부행장은 올 3월 하나은행장 선임 과정에서도 김종준 행장과 함께 행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김 회장은 하나은행에 새로운 행장을 둬 경쟁구도를 가져가는 대신 김병호 부행장 직무대행 체제를 택했다. 김한조 행장에겐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하나금융 그룹사 한 고위관계자는 "대행체제로 가기로 한 것을 보면 김한조 행장을 통합은행장으로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하나금융 입장에선 외환은행 노조와 직원들을 추스르고 다독여 성공적인 통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하나은행 출신보다는 외환은행 출신이 제격이란 이야기다. 애초 윤용로 전임 행장 대신 정통 '외환맨'인 김한조 행장을 그 자리에 앉힌 것도 통합에 속도를 내기 위함이다. 통합 과정에서 외환은행 직원 그리고 노조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다. 실제 김 회장은 노조와의 협상 등 모든 권한을 김한조 행장에게 위임하기도 했다.
김정태 회장 입장에서 봐도 '견제의 원리'에 부합하는 인물이 김한조 행장이다. 김 회장은 흔히 말해 '성골' 출신은 아니다. 성골은 김승유 전임 회장을 비롯한 옛 한국투자금융(하나은행의 전신) 출신들을 가리킨다. '진골(옛 하나은행 출신)'도 아니다. 김승유 회장은 퇴임했지만 이들 세력은 여전히 하나금융 내 주류로 남아 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전임 회장의 그림자를 지우고, 이들을 견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지주에 있는 두 명의 부사장도 모두 서울은행 출신으로 채워졌다. 김 회장의 인사스타일과 그간의 행보에 비춰보면 외환은행장을 통해 견제를 도모하려는 의중도 엿보인다.
어차피 김한조 행장이 통합은행장을 맡더라도 1년 뒤엔 재신임이라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통합은행 1년 후 재평가라는 형식을 통해 김한조 행장에겐 성공적인 통합이라는 숙제 해결에 동력을 부여한다. 김 회장의 '진짜 복심'은 그때 드러날 전망이다. 김 회장은 또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