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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금융위의 '퉁치기'

  • 2015.06.09(화) 09:43

인터넷전문은행 쟁점은 금융개혁회의로 떠넘겨
기술금융 혁신성평가·우리은행 민영화도 마찬가지
권한은 있고 책임은 회피하는 금융위

정책실명제라는 게 있습니다. 정부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는 관련자의 실명과 이력을 기록·관리해 정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요. 지방자치단체에서 조금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정책을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정책에 대한 신뢰가 생기니 바람직한 방향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요즘 금융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반대로 가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1. 인터넷 전문은행 쟁점, 금융개혁회의에 '퉁'

인터넷 전문은행을 추진하는 모습에서 특히나 그렇습니다. 인터넷 은행이긴 해도 지난 1992년 옛 평화은행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은행산업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결코, 가벼운 일도 아니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어떤 정책보다 철학, 확신, 책임감 등이 중요한 일이기도 한데요.

금융위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구체적인 안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있겠지요? 금융위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과 관련해선 금융개혁회의에서 전적으로 결정합니다. 지금 얘기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니까요." 자꾸 캐묻는 기자를 따돌리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인터넷 전문은행과 관련한 가장 큰 쟁점은 금산분리 완화(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규제) 수준, 최소자본금, 업무영역 등입니다. 금융위는 이 쟁점 사안을 모두 금융개혁회의에 떠넘겼습니다.

오는 18일 금융개혁회의가 열리는데요. 현재로썬 은행 소유규제 완화에 대해 3가지 안을 올린다고 합니다. 가령 1안 30%(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 2안 50%, 3안 100% 이런 식이지요. 최소자본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안 시중은행과 같은 1000억 원, 2안 지방은행 기준인 250억 원보다 높은 수준. 대강 이런 식이라는 겁니다.

금융개혁회의에 앞서 이번 주 위원들이 모여 토론회를 연다고 하니 이 보다는 좁혀진 안이 올라갈 수도 있겠지요. 금융개혁회의란 게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금융개혁과 관련한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이니 금융위의 행보가 그럴듯합니다. 그래도 자꾸 민감한 사안에 대해 책임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 금융개혁회의

인터넷 전문은행을 추진하면서 국회를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국회 통과는 가장 어려운 관문입니다.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은 비즈니스워치와의 전화통화에서 "금융위가 인터넷 전문은행을 왜 하려는 거지요?"라고 반문합니다. "핀테크 바람에 휩쓸려서 가는 것 같은데 필요성 등의 측면에서 충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면서 "특히 금산분리 완화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 얘기대로 핀테크 바람에 휩쓸려가는 게 아니라면, 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국회 탓을 할 일이 아닙니다. 국회에 떠넘겨서도 안 됩니다.

2. 혁신성 평가는 금감원에 '퉁치려다'……

혁신성 평가는 또 어떻습니까. 한 달 전쯤 일입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혁신성 평가를 우리한테 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원래부터 금융위에서 시작했던 일을 이제 와서 왜?"라고요. 금융위는 은행 혁신성 평가를 금감원 주도로 바꾸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금감원은 반발했고요.

결국 어제(8일) 금융위는 말 많고 탈 많은 혁신성 평가 부분을 빼고 기술금융 제도 개선만 발표했습니다. 혁신성 평가는 사실상 은행의 기술금융을 평가하고 독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양적 평가 기준 탓에 일반 중소기업대출이 기술금융으로 둔갑하는 등 부작용은 많고, 실효성은 떨어졌습니다. 관치논란도 일었습니다. 그렇다고 시행한 지 일 년 만에 없앨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금융위는 그 부담과 책임을 금감원에 떠넘기려고 한 게 아닐까요.

3. 우리은행 민영화는 공자위에 '퉁'?

네 차례의 우리은행 민영화 실패 원인엔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공무원만 탓할 순 없습니다. '변양호 신드롬'도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공무원들이 책임을 떠넘기고 보신주의로 일관하는 사이 '어정쩡한 우리은행'은 금융산업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겠지요.

그동안에도 그랬지만 이번 우리은행 민영화를 바라보는 금융위의 시각은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공자위로 공을 떠넘기는 분위기가 커졌으니까요. 통상은 금융위 주도로 민영화 방안을 짜고, 공자위원들이 논의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에 어찌 된 일이지 거꾸로입니다. 공자위가 더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박상용 공자위원장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우리은행 민영화가 더 힘겨워 보입니다.

각종 금융감독 및 정책에 대한 금융위의 권한은 커져만 갑니다. 흔한 말로 권한 만큼이나 책임을 질 생각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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