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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흔치 않은 집단 반발…체면 구긴 임종룡

  • 2015.09.17(목) 16:53

금융위,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계획 철회
은행들 생각대로 유암코 확대 개편해 대응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지시로 추진하던 민간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이 무산됐다. 대신 기존의 부실채권처리회사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확대 개편해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정부의 입김이 강한 금융권에서 은행권의 집단 반발이라는 흔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금융위는 17일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규 설립보다는, 유사 기능을 수행 중인 유암코를 확대 개편하자는 은행연합회의 건의를 수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은행연합회는 전날 저녁 "내일 중으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준비위원회를 개최해 유암코 확대 개편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아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애초 국민·기업·농협·신한·우리·하나·산업·수출입 등 8개 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 1조 원, 대출 2조 원 등 총 3조 원을 투입해 오는 11월까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은행들은 자금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 견해를 밝혀오다가, 17일 최종 의견을 금융위에 전달했다.

◇ 설립 한 달여 앞두고 급하게 선회

은행권의 건의를 금융위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금융위가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결국 체면을 구겼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설립 무산을 결정한 시기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임종룡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까지만 해도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을 통해 안정적인 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도 "조만간 설립하겠다"고 공언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래부터 유암코 확대 개편 방안도 고려했는데, 유암코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신설 방안을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임 위원장의 최근 발언만 보면 설립 한 달을 앞두고 급하게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설립준비위원회가 참여 은행 부행장들로 구성돼 있긴 하지만, 금융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안인 만큼 준비위와 기관 설립을 논의해왔을 거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출자금 부담에 대한 은행들의 불만을 금융위가 몰랐을 리 없는데, 출범 한 달을 앞두고 갑자기 이를 받아들인 점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 임종룡 위원장 정책 신뢰도 '타격'

기존 구조조정 방식의 한계를 타파하겠다며 기관 신설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임 위원장의 정책 신뢰도에는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금융당국의 수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방안이 사실상 금융사 반발로 무산된 것부터 흔치 않은 일이다. '관치금융'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은행들은 정책당국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이 처음부터 은행권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동안 일관되게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새로 만들겠다"고 강조해온 만큼 이번 결정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기관 신설의 명분도 부족했다. 신설 기관과 유암코의 기능 중복 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된 사안이다. 이는 금융위가 17일 내놓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관련 참고자료에도 잘 나와 있다.

금융위는 "신규 설립에 따른 시간 소요와 인력 채용 등의 비용을 절감하고, 유암코의 우수한 구조조정 인력 활용이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는 데 효율적이라 판단한다"며 "유암코 수익성도 양호한 수준으로 신설법인 초기 적자 운영 가능성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현재의 현금 흐름을 구조조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그러면서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과 비교해 구조조정 여력이 줄지 않도록 유암코의 기능을 확대·개편할 계획"이라며 "기관 신설안과 비교해 규모와 기능을 확대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 진행이 가능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 설명을 놓고 보면, 오히려 유암코의 기능 확대를 추진하는 게 더 효율적인 방식이었던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유암코를 확대 개편해 애초 취지를 살린다고 하더라도, 상징성이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금융위, 내달 구체 계획 발표

유암코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시중은행들이 출자해 설립한 회사로 자산 유동화와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다. 신한·국민·하나·기업·농협·우리은행이 주주다. 은행들은 유암코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이번 방안에 따라 중단했다.

유암코 확대 개편 방안으로 은행들의 당장 출자부담은 없어졌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신설에 참여키로 했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기존 주주은행들로부터 지분을 인수할 전망이다.

금융위는 은행권과 유암코와의 협의를 거쳐 내달 유암코 확대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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