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이맘때다. 지난해 11월 우리은행은 과점주주 매각을 통해 사실상 민간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정부 지분 18.52%(당시 21%)가 남긴 했지만 민영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했다. 정부와 우리은행 모두 축포를 터트렸다.
이듬해인 올해 1월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사실상 처음으로 외부 입김을 배제하고 사외이사가 주축이 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하면서 의미는 남달랐다.
하지만 이 행장은 2년의 임기중 절반도 채우지 못한채 결국 스스로 물러나게 됐다. 신입사원 채용비리가 결정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상업·한일은행 계파갈등이 또다시 불거졌다. 은행은 어렵사리 민영은행이란 새 옷으로 갈아 입었지만 우리은행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DNA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은행의 2016년 신입직원 채용비리는 앞으로 검찰 수사 등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청탁명단만으로도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문제가 된 지난해 신입직원 채용은 민영화 전이긴 했지만 정부와 우리은행이 한창 민영화를 위해 군불을 때고 물밑에서 구체적으로 움직이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 국정원, 금감원 등의 정부 관계기관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인사청탁을 넣었다. 우리은행 간부들 역시 추천이란 형태로 지인이나 가족들의 인사청탁을 했다. 우리은행은 이런 인사청탁이 실제 채용과정이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과련 문건을 만들어 관리했다는 점에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미 SNS에선 이를 풍자하는 동영상들이 만들어지고, 금융권은 물론이고 우리은행 내부 직원들조차 우리은행의 공식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 이로 인해 우리은행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공신력 또한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 행장이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사의를 표한 것 역시 이런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채용비리 건이 불거지면서 상업·한일은행 계파 갈등이란 구태도 재연되고 있다. 채용비리 문건을 제보한 것이 한일은행 출신의 전직 임원일 것이라는 추측이 벌써부터 나왔다. 문건 안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상업은행 출신이란 점에서도 '의도된 비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도 "모두 상업은행 출신들만 올라와 있어서 결국 상업·한일 진흙탕 싸움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상업 한일 계파간 갈등은 우리은행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전임 이순우 행장에 이어 이광구 행장까지 잇따라 상업은행 출신의 행장이 배출되면서 한일은행 출신들의 불만도 잇따랐다.
사실 채용비리 건이 아니더라도 이 행장에 대한 투서는 끊이지 않았다. 이 행장의 연임 전후로 극에 달했고, 여전히 이 행장에 대한 각종 루머나 의혹을 담은 투서들이 관계기관들에 빗발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한일은행 출신들의 불만이 이런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계파와 관련이 없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은행 한 직원은 "상업 한일 출신의 부서장급 이상 임원들이 모두 나가야 (계파갈등이) 사라질 것"이라며 "이들이 은행을 되레 후퇴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상업, 한일 누가 오든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란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직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시스템과 인사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은행이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당장 이 행장의 사의로 우리은행의 정부 잔여지분 매각과 지주사 전환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경영공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상근감사위원을 제외하곤 사내이사가 이광구 행장이 유일해 당분간 행장직을 수행하겠지만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결재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전략적인 의사결정은 최소한 내년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