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현재까지 외국투자자 3곳과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 이하 ISD)에 휘말렸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제기한 ISD는 4건이다.
일각에선 ISD를 빌미로 한국 정부가 해외 투자자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국내 투자자도 ISD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종 중재 결과를 보면 한국 정부나 투자자가 패한 경우가 많아 이익보단 손해가 더 컸다. 여기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ISD를 준비하는 등 앞으로 한국정부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삼성엔지니어링, ISD 적극 활용
15일 대한상사중재원에 따르면 한국 정부나 투자자가 ISD에 관여된 분쟁은 총 7건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이란계 엔탁합그룹, 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투자회사 IPIC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제기한 ISD는 4건이다. 이중 2건은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정부를 상대로 신청한 ISD이고 나머지는 중소기업과 개인투자자가 제기했다.
가장 최근에 ISD를 제기한 곳은 삼성엔지니어링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7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ISD 중재를 제기했고 현재 중재판정부 구성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선정한 중재인(Staimir A. Alexandrov)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선임한 중재인(Jean Kalicki)에 대해 양측이 모두 반대하면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2년 중국 등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발전·해수담수화 플랜트 사업을 발주했다.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해수담수청이 플랜트 터빈 사양 변경을 요구하면서 완공일이 2년가량 늦춰졌다. 이 과정에서 컨소시엄간에 의견대립이 생겼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7년 삼성엔지니어링에 계약 종료를 통보, 분쟁이 발생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ISD를 제기한 것은 두 번째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2년 오만 정유공장 사업을 수주했지만 최종계약 단계에서 오만 국영 정유회사가 부당한 이유로 다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ISD를 제기했다. 분쟁 2여년만인 지난 1월 양측은 '합의'로 중재를 끝냈다.
합의로 종결된 이번 분쟁은 승패가 없는 '무승부'지만 사실상 삼성엔지니어링이 이겼다는 해석도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국제투자중재센터는 올 2월 삼성엔지니어링이 오만에서 수주한 정유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ISD가 합의로 종결된 이후 삼성엔지니어링과 오만 정부 사이의 우호적인 기류를 보면 무승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의 승리"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안성주택산업은 2014년 중국정부를 상대로 골프장 건설 계약 위반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ISD를 제기했지만 '제척기간 경과'로 중재에서 졌다. 2013년 국내 한 개인투자자는 키르기스스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 분쟁에서 이겼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모스크바 법원에 불복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ISD 판정은 '취소'됐다. 재판으로 보면 항소심에서 원심이 뒤집힌 셈이다.
◇ 한국 노리는 론스타·엘리엇
해외투자자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는 총 3건이다. 2015년 이란의 다야니 가문과 아랍에미리트 국제석유투자회사 IPIC의 자회사 하노칼이 나란히 한국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다야니는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몰수된 계약금 578억원이, 하노칼은 현대오일뱅크 주식 매각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된 2400억원이 분쟁의 씨앗이 됐다.
결과는 1승1패였다. 하노칼이 중재를 중간에 취하하면서 사실상 한국정부가 이겼고, 엔탁합과 중재에선 한국정부가 지면서 730억원을 물려줘야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정부는 취소 신청 등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정부간 ISD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업계는 올해 말에는 중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쟁금만 46억7950만달러(5조1133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중재로 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분쟁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론스타가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국세청은 세금 3915억원을 물렸는데, 론스타는 이 세금이 '자의적이고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2006년 KB금융지주에, 2007년 HSBC에 매각하려했지만 정부가 승인을 늦추면서 2조원대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7000억원의 손실을 보았다며 한국정부를 상대로 ISD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와 엘리엇은 화상 회의를 통해 사전협상을 벌였다. 아울러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이동통신 요금 인하 정책에 따라 해외 투자자가 ISD를 제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