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판정부는 캠코가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한국정부가 청구금액 935억원중 730억원을 다야니측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음."
지난 7일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배포한 '이란 다야니家와의 ISD 중재판정 결과' 보도자료 내용중 일부다. 한국 정부는 처음으로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 이하 ISD)에서 졌지만 보도자료 어디에서도 '왜 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취소 신청 등 후속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후속 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패소 이유를 밝히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재 판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 쟁점을 알려주기는 곤란하다"고 전했다.
정부가 ISD 정보를 숨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12년 한국정부를 상대로 46억7950만달러(5조1133억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자세한 중재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론스타가 경고했다는 사실을 숨겼고 론스타가 실제로 ISD를 제기한 뒤에도 중재의향서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중재의향서를 공개한 쪽은 한국 정부가 아닌 론스타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정보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장막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정부를 상대로 ISD 청구금액의 근거를 밝히라고 소송을 냈지만 각하됐다. 이후 민변은 국세청을 상대로 "론스타가 손해봤다고 주장하는 과세·원천징수금을 공개하라"고 제기한 소송 1~2심에서 승소했지만 국세청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침해하고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ISD 정부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깜깜이 행정이 세계적 흐름과 역행한다는 지적도 많다.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ISD 모든 사항에 대해 비공개 원칙에 의한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지만 ISD 중재의향서를 접수하면 정부 홈페이지에 곧바로 전문을 공개하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를 쓴 원종현 입법조사관은 18일 "어떤 사건이 ISD에 제소됐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졌다면 왜 졌는지 등에 대해 국민은 알권리가 있다"며 "결국 ISD 비용도 국민 세금으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ISD 정보를 숨기는 이유가 꼭 전략 때문은 아니다.
법무부는 지난달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제출한 4장짜리 중재의향서 원문을 공개했다. 론스타 때와 달리 정부가 먼저 중재의향서를 공개한 이유는 한미FTA에 중재의향서 원문 공개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어쩔수 없이 정보를 공개하게 된 셈이다. 반면 론스타가 제기한 ISD는 정보공개 의무가 없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ISD 정보를 숨기는 배경엔 국가가 소송을 당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을 치부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김종우 변호사는 "중재는 당사자끼리 합의를 통해 비밀로 진행할수 있지만 투자자와 국가간 중재인 ISD는 공개가 원칙"이라며 "최근 선진국은 ISD 정보를 공개하는 추세이고 심리절차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ISD 정보 공개 여부는 당사자끼리 정하기 나름"이라며 "한국정부가 ISD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행위이고 후진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