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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생보업계 즉시연금 ‘폭탄돌리기’

  • 2018.08.03(금) 15:03

삼성생명 일괄지급 거부로 한화생명에 공 넘어가
보험사 실적악화로 다른 소비자에 풍선효과 우려
당국, 보험상품 원칙-소비자보호 균형 잡아야


제2의 자살보험금 사태로 불리며 생보업계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즉시연금’ 논란이 소위 ‘폭탄돌리기’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보험금 지급결정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 권고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한화생명에 공을 넘겼기 때문이다.

 

약관과 관련해 법률검토를 진행중인 한화생명은 오는 10일까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즉시연금 추가지급 권고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이달말에는 일괄지급 권고에 거부의사를 밝힌 KDB생명의 즉시연금 과소지급에 대한 분쟁조정위 개최도 예정돼 있다.

금감원은 올해초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과소지급에 대한 분조위 결정 지급사례를 들어 한화생명을 비롯해 업계 전체에 동일유형의 즉시연금에 대한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할 것을 지시했다. 삼성생명이 4300억원, 한화생명 850억원, 교보생명 700억원 등 업계 전체적으로 16만건, 미지금급 규모만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업계의 모든 시선은 오는 10일 예정된 한화생명의 결정에 쏠렸다. 대형사들의 지급 결정과 그에 따른 금융당국의 행보가 여타 보험사들의 기준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주일을 남긴 상황에서도 한화생명은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첫 분조위 결정이 내려졌던 삼성생명 민원 사례보다 규모가 적지만 금감원에 알리기 전 이를 이사회 안건에 올릴지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만약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여 보험금을 추가지급할 경우 삼성생명처럼 지급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업계 전체가 일괄지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취할때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급거부를 선택할 경우 당국과 척을 질수 있어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앞서 삼성생명이 당국 권고를 거부한 만큼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약관오류에 대한 추가 법률검토를 받겠다는 삼성생명도 이전 분조위 지급권고에 보험금 전액을 지급했기 때문에 사실상 시간만 벌었을 뿐 여전히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계약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뗀 금액을 공시이율로 운용해 매달 운용수익을 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때 원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뗀 만큼 만기에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보험사들은 운용수익에서 일부를 떼 만기환급금 재원(책임준비금)으로 쌓아왔다. 당국은 이 내용을 약관에 명확히 기재하지 않았다며 그동안 운용수익에서 떼 쌓은 금액을 미지급 연금액으로 전부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보험업계는 보험상품은 기본적으로 보험료에서 일정부분 수수료를 떼는 구조여서 금감원의 이번 결정이 보험원리상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기초서류에 해당하는 산출방법서 상에 관련 내용을 기재하고 있어 이를 약관에 포함됐다고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당국은 보험료 계산에 관한 산출방법서는 계약자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약관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보험금’에 해당하는 연금액과 보험사가 임의로 운용수익에서 떼 쌓아둔 ‘책임준비금’은 서로 개념과 법적인 성질이 달라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의 내용을 연금액에 대한 약관의 일부로 보는 것도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약관의 미비점이 문제지만 보험상품과 보험업의 구조를 안다면 당국이 해서는 안될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고객에게 사업비를 떼고 적립되는 금액을 알리고 팔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1억원을 내면 1억원이 원금이라고 인식하기 쉽기 때문에 판매당시 원금에서 일부를 뗀 금액이 운용된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소비자보호로 귀결된다. 금감원이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일괄지급이라는 강경책을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살보험금 때처럼 법적분쟁으로 갈 경우 소멸시효 발생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도 단순하지 않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금감원과 보험업계에서는 즉시연금 논란이 자살보험금과 비슷한 결론으로 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보험사들이 끝까지 금감원과 대립하는 모양새를 가져가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중소형사들의 경우 미지급금 규모가 당기순이익을 뛰어넘는 규모라 부담이 크다. 대형사들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자살보험금, 즉시연금과 같은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보험상품의 손해율이 올라가면 보험료를 높인다. 혹은 보험금 지급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고령자나 유병자 등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의 계약심사 기준을 높일 수도 있다. 수익이 감소한 만큼을 보전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란 얘기다.

즉시연금 소비자 보호만 강조하다 자칫 더 큰 보호가 필요한 다른 소비자 보호가 어려울 수 있다. 금융당국이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이유다. 약관 미비에 대한 책임은 보험사가 져야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당국이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잘못된 약관 정비와 원칙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소비자보호가 이뤄져야 보험사가 돌리는 폭탄이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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