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보험업계 수장과의 상견례에서 즉시연금·암 보험금 분쟁 등 '예민한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윤 원장은 이 자리에서 '소비자'라는 단어를 11번 언급하며 우회적으로 보험사를 압박했다. 윤 원장이 보험사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 개선을 위한 혁신TF(테스크포스팀)를 가동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한 만큼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헌 원장은 7일 생·손보협회장을 비롯해 34개 보험사 CEO(최고경영자)들과 서울 명동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간담회를 갖고 "보험업계가 그동안 나름 소비자권익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소비자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신뢰를 얻으려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 가입은 쉽지만 보험금 받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한데다 보험약관은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약관 내용 자체가 불명확해 민원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즉시연금과 암보험 관련 사안들을 정조준 했다.
이어 윤 원장은 현재 보험약관 문제에 따른 제도와 관행 개선을 위해 "금감원 내 혁신 TF(테스크포스팀)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사장단과 업계가 이에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만기환급금 재원에 대한 설명이 없다'며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소비자에게 모두 돌려주라는 분쟁조정결과를 받아들였음에도 비슷한 사례의 소비자에게 일괄 지급하라는 권고는 사실상 거부한데다, 한화생명까지 즉시연금 관련 분쟁조정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즉시연금 논란은 소비자들과 보험사간 소송전으로 치닫고 있다.
앞서 윤 원장이 종합검사 등으로 (분쟁조정결과 수용여부에 대해) 보험사를 압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TF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풀이된다.
윤석헌 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만 '소비자'란 단어를 11회 언급하며 소비자보호에 방점을 둔 감독정책의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윤 원장이 현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것은 금감원과 보험권이 계속해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 부각되는 것을 우려한 행보로 비친다. 그는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건전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금감원과 보험업계의 목표가 다르지 않다고 언급하며 외부적인 갈등 모습을 봉합하려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실제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즉시연금 등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 인원도 많고 첫 상견례자리인 만큼 얼굴 붉히는 이슈에 대해 가급적 언급을 자제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보험권 수장들은 간담회 내내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일부 참석자들은 윤 원장이 직접적인 언급만 피했을 뿐 간접적으로 전달된 의미는 모두 느꼈을 것이라며 보험업계를 겨냥한 TF가 출범하는 만큼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혁신TF는 금감원 내 각 부서장들로 구성돼 현안뿐만이 아닌 상품개발, 영업을 비롯한 보험권 전체에 미치는 통제력이 클 전망이다.
한편 윤석헌 원장은 이날 보험권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따른 재무적 충격을 대비해 리스크관리 역량을 강화할 것을 당부하고,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대해서는 단계적 도입방안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에서 제기된 일부 회사들의 K-ICS 도입을 늦춰달라는 건의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