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본현대생명이 공정거래법상 현대차그룹 계열에서 완전 분리됐다. 지난 9월 3000억원 유상증자를 하면서 대만 푸본생명이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현대차그룹이 최다출자자 지위와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계열분리는 현대차그룹과 푸본현대생명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통합감독 대상서 제외…현대차그룹 금융계열 통합자본비율 상승 기대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말 푸본현대생명(구 현대라이프)의 3000억원 주주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서 현대모비스가 증자에 불참하면서 푸본생명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
기존에 지분 48.62%를 보유하고 있던 푸본생명은 3000억원 가운데 현대모비스 실권주 전량을 포함해 2336억원의 자금을 투입, 지분율을 62.4%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30.28%)와 현대커머셜(20.37%)을 합해 50.65%였던 현대차그룹 지분율은 현대커머셜이 20.44%, 증자에 불참한 현대모비스가 17.08%로 낮아져 총 37.52%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에 푸본현대생명의 계열분리를 신청했고 지난달 18일 이를 승인받았다.
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는 기본적으로 최다출자자 요건을 우선적으로 따지지만 최다출자자가 아니라도 해당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과 임원 구성 등의 요건을 감안해 계열분리 여부를 판단한다.
아직까지 정태영 부회장이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이재원 대표가 연임해 상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공정위는 실질적인 경영권을 푸본생명이 행사하게 된 것으로 봤다. 상품계리, 감사, 재무관리 등 핵심부서 경영진을 비롯해 사외이사들이 푸본계 인사로 교체되면서 현대차그룹의 지배력이 크게 낮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대모비스와 현대커머셜은 회계상 푸본현대생명에 대해 지분법을 적용받아 보유지분만큼을 당기순익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현대모비스의 경우 지분법 기준인 '보유지분 20% 아래'인 상태임에도 지분법을 적용하는 것은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적용된 결과다.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 빠르게 계열분리를 진행한 것은 금융그룹통합감독에 따른 부담감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존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는 푸본현대생명을 포함해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현대차증권이 있다. 이중에서도 푸본현대생명은 계열사 퇴직연금 비중이 100%에 육박해 통합감독에 따른 집중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 감독당국이 주시해 왔다. 9월말 기준 푸본현대생명의 퇴직연금 적립금 1조1968억원 가운데 1조1747억원이 계열사 퇴직연금이고 98.15%에 달한다.
더구나 푸본현대생명의 적자가 지속되면서 통합그룹 감독시 그룹 전체의 자본비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 금융감독원이 내부거래와 계열사 의존도가 높은 그룹의 경우 추가자본 적립 등 위험회피 조치를 의무화 할 방침이어서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푸본현대생명이 계열분리돼 통합감독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현대차그룹은 부담을 털어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계열분리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금융그룹통합감독 대상에서 푸본현대생명은 빠지게 된다"며 "금융계열사 중에서 상대적으로 자본비율이 좋지 않았던 만큼 현대차 금융그룹 입장에서는 전체 자본비율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푸본현대생명, 푸본생명 떠날 걱정 없어져…추가 지원도 기대
푸본현대생명으로서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대만 푸본생명의 적극적인 지원 가능성이 높아진 때문이다.
푸본생명은 2015년 12월 현대라이프(현 푸본현대생명)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8.62%를 확보하면서 국내 보험시장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푸본생명과 현대차그룹은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푸본생명은 보유지분을 현대모비스와 현대커머셜에 취득원가에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걸어놨다. 언제든 지분을 팔고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풋옵션 조항은 삭제됐다. 단순투자 목적이 아닌 적극적인 경영참여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앞서 핵심부서 임직원을 교체한 것도 이같은 입장변화를 뒷받침한다.
푸본현대생명은 지난 9월 3000억원 증자로 건전성 기준인 RBC(지급여력비율)를 250% 이상으로 끌어올렸지만 와해된 영업조직과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자금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더욱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과 건전성제도(K-ICS) 개편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추가 자본확충도 요구된다. 때문에 푸본생명이 대주주로서 경영권 행사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자 차후 자본확충 단계에서 추가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현대차그룹의 해외 신용등급이 Bbb1(무디스 기준)로 하향 조정된 반면 푸본생명은 현대차그룹 대비 한단계 높은 A3(무디스 기준)를 유지하고 있어 해외 자금차입에 있어서도 더 긍정적일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 해외 신용등급이 낮아진 것과 달리 푸본생명은 이보다 1노치(noch)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지원능력 측면에서는 과거대비 좋아질 수 있다"며 "직접적인 자금지원뿐 아니라 해외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해외 차입에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