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사정사(이하 '손사')의 업무 범위를 늘려 좀 더 객관적인 보험금 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소비자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구조에서는 보험사에 유리하게 보험금이 산정될 가능성이 높아 손해사정제도를 도입한 취지가 무색하다는 이유에서다.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손해사정사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창희 국민대학교 교수는 "손해사정의 공정성,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손사제도가 도입됐다"며 "하지만 보험사가 위탁, 고용의 형태나 자회사에 손해사정 업무를 맡기면서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돼 소비자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 "소비자가 선임한 손사는 손해사정서를 제출하고 의견개진을 할 수 있을 뿐 손해사정서 자체도 별다른 법적효력이 없어 공정한 손해사정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사는 손해사정사를 보험금을 줄여주는 존재로, 소비자는 손해사정사를 보험금을 더 받아주는 존재로 인식해 객관적 손해사정을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 상황"이라며 "소비자가 손사를 선임할 경우 보험금 지급 전과정에 관여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를 확대해 객관적인 보험금이 산정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소비자들은 손해사정이 보험사가 '보험금을 삭감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417명(2017년말 기준)에 달하는 손해사정사 가운데 보험사에 직접 고용되거나(고용손사), 업무를 위탁받거나(위탁 손사) 해당 보험사의 자회사로 설립된 손해사정업체(자회사 손사)에 근무하는 손해사정사가 4447명으로 82.6%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험사에 소속돼 있거나 보험사와 계약관계를 유지해 보수를 지급받는 만큼 보험사에 유리한 손해사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소비자들이 선임할 수 있는 독립손해사정사들은 940명으로 전체의 17.3% 수준인데, 소비자들은 이러한 제도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계가 어려운 독립손사들의 경우 보험금을 많이 받아주겠다며 과도한 금액을 보험사에 요청해 보험소비자 불신을 조장시키거나 지급받는 보험금의 10~20%, 많게는 30% 가량의 과도한 보수를 받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무위원회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이같은 취지에서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를 확대해 소비자가 선임한 손사가 보험사와 손해액 및 보험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보험계약자에게 이를 설명하는 행위를 추가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전문가들 역시 손해사정사가 현재 이같은 업무들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법상 업무범위가 불명확해 구체적인 법적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창호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현재도 (독립)손사들이 자신이 사정한 내역과 보험사가 사정한 내역을 비교해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계약자에게 설명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며 "이는 손해사정사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업무인데 법상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법조계는 이같은 행위들이 자칫 법상 화해, 중재 등의 행위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보험업계는 독립손사의 업무범위를 확대하면 단순합의가 가능한 부분까지 보험민원 등을 유도하는 쪽으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천하람 대한변호사협회 이사는 "법상으로 보험사와 손해사정서 내용을 협의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설명하는 정도로 나와 있지만 업무 과정에서 손해사정사들이 보험사와 의견 교환을 넘어 소비자를 대리해 화해, 중재 등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엄연한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업무범위를 확대할 경우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단순합의 가능 사례까지 오히려 민원으로 확대되고 혹은 민원으로 유도하는 등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며 "긍정적인 측면도, 부정적인 측면도 종합적으로 따져 각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금융당국 역시 일부 개선이 아닌 손해사정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법안 개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주식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소비자가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긍정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보수체계에서는 보험사에 과도하게 보험금을 요구하고 이후 협상, 중재 등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법률적인 화해, 중재와 어떻게 구분할지 논의가 필요하며, 이에 앞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보수체계 마련 등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