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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관행이 만드는 은행 불완전판매

  • 2019.09.17(화) 16:11

'대외비 행내한' 문서 영업활용, 불완전 판매 시비
직원 편의 이유로 여전히 사용
편의·성과보다 제대로 된 상품안내 강조돼야

추석 연휴 직전 서울 시내 한 KB국민은행 영업점 창구를 찾았다. 창구에 앉아 은행업무를 보던 중 코팅돼 창구에 부착돼 있는 상품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계열사인 KB국민카드가 내놓은 티타늄카드 2가지 혜택 등이 간단하게 요약돼 있었다.

기자가 창구 직원에게 해당 카드에 대한 설명을 묻자 창구에 부착된 자료를 바탕으로 카드에 대한 혜택 등을 설명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고 하자 그제서야 해당 카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첨부된 브로셔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요약문이 '행내한' 문서라는 점이다. '행내한' 문서란 말 그대로 은행 내부에서만 공유돼야 하는 문서로 상품에 대한 요약된 설명과 타겟 고객층 등이 적혀있는 '대외비' 문서다. '행내한' 이라는 표기 밑에는 '외부유출 금지'라는 문장도 달려있다.

KB국민은행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신한, KEB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의 영업점을 찾아 펀드 등 상품에 대해 문의했다. 이들 은행 창구 직원이 설명을 위해 내놓은 파일철에 담긴 상품 포트폴리오 중 일부는 '행내한' 이라고 적시돼 있었다.

은행 영업점에서 이러한 '행내한' 자료를 통해 영업을 하는 것은 불완전 판매 소지가 있다. 금융상품은 상품이 복잡하고 고객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금융상품 판매과정에서 금융사 직원과 고객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금융사 직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상품 판매 시 고객에게 해당상품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야하며 고객의 이해를 도울 '의무'가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는 간략하게 요약된 '행내한' 자료가 아닌 상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기재된 상품안내서를 활용해 고객의 이해를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 영업점 일선에서 이러한 '행내한' 자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에게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상품의 경우 상품에 대한 설명이 A4용지 5장에 달하기도 한다. 반면 '행내한' 자료는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편집돼 있다. 은행 영업점 창구 직원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설명하기 더욱 간편했을 것이다. 한 은행 영업점 직원은 "편리하기 때문에 관행 처럼 영업에 사용되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원금 손실 가능성이 불거져 논란이 된 독일 국채 10년물 파생결합증권(DLS)·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도 바로 이 '행내한' 자료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이 상품을 판매한 우리은행을 불완전판매 등으로 고발한 시민단체들은 해당 상품의 '행내한' 문서를 확보해 증거로 제출했다. 우리은행이 이를 활용해 이 상품을 판매했기 때문에 엄연한 불완전판매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행내한' 자료가 불완전 판매의 증거품으로 제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영업점 일선에서는 여전히 '행내한' 자료를 활용한 영업이 이뤄지고 있던 것이다. 은행 영업점 직원들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안일함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는 비단 영업점 직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은행 경영진도 은행 상품의 판매에 대해 안일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시중은행 은행장들, 중소기업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제2차 중소기업 금융지원위원회'를 열고 중소기업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박영선 장관은 해당 회의 3일 전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해 화제가 됐던 'NH-Amundi 필승코리아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해당 펀드에 가입하는데 40분이나 걸렸다"며 "펀드 가입 시간이 너무나 긴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농협은행 임원은 "최근 대통령께서 가입하신 이후 하루 1000좌 넘게 가입이 몰리면서 시간이 지체된 것 같다"며 "앞으로는 가입시간이 짧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은행 임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답이다. 해당 상품은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상품에 속한다. 총 6단계의 위험도 중 2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따라서 대답은 "가입 시간이 단축될 것"이 아닌 "취지는 좋은 상품이지만 해당 상품의 위험도가 높고 복잡한 상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다"와 같았어야 했다.

올해초로 돌아가보자. 각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 등은 올해 연간 계획을 내놓으면서 디지털과 글로벌사업 역량을 강화함과 동시에 '고객중심' 영업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사 수장들의 고객중심 영업 방침에 따라 은행 서비스를 좀더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고 '맞춤형 서비스'를 추천받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혀진듯 하다. 금융사로서 존재의 이유다. 금융사는 고객의 자산을 기초로 사업을 영위한다. 때문에 고객이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 근절을 외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업계에서는 상품의 흥행 이전에 고객이 안심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상품에 대한 충분한 안내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 그간 직원들의 편리함이라는 핑계에 묻힌 관행을 이제는 걷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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