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새로운 제도권 금융업이 생긴다. 최근 P2P(개인간거래) 금융업의 영업행위와 규제 등을 규정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P2P 금융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동안 대부업체 등에 결합해 운영되던 P2P 금융업이 빠르면 내년부터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된다.
P2P 금융업은 최근 수년간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는 업종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로부터 모집한 자금을 차입자에게 공급하는 형태의 대출이 주된 영업 형태다. 지난 2015년 말 373억원을 기록한 P2P 누적 대출액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6조2521억원으로 160배가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그간 P2P는 별도의 법안이 없이 대부업법의 일부 규정을 바꿔 운영해왔다. 법적인 효력이 약한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통한 규제를 받다 보니 사실상 무법지대였다. 일부 일부 P2P 금융업체는 연체율이 90%가 넘는 등 사각지대가 컸다.
하지만 이번에 입법을 통해 P2P금융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면 상당수의 문제점이 해결될 전망이다.
◇ 급성장 P2P 금융시장…심각한 부실 해소될까
그동안 P2P 금융업이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지난해에만 총 5개의 P2P 금융업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번에 통과한 법안은 민병두 정무위원장의 주도로 그동안 제출된 법안을 통합·조정해 만든 대안이다. 여·야 의원의 고른 참여 덕분에 소관위와 법사위, 본회의 등 입법절차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새로운 금융영역을 규제하는 법이 새로 제정된 것은 지난 2002년 대부업법 제정이래 17년 만이다. 정치권이 P2P 금융법 개정을 서두른 것은 그동안 P2P 금융업에 적용되던 법규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협회에 등록된 P2P 금융업체 45개의 평균 연체율은 8.8% 수준이다. 7% 수준인 대부업체 평균 연체율을 넘는다. 11곳은 연체율이 10%를 넘어서며 50%가 넘는 연체율을 기록한 곳도 6곳이나 된다.
실제로 P2P 금융업계에서는 먹튀 등 사기와 부도, 대표잠적 등의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금융위원회에 P2P 금융업을 규제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한 바도 있지만, 법적인 근거가 없다 보니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각종 가이드라인만 난무했다.
◇ 정식 P2P 금융업체 이르면 내년 하반기 등장
하지만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P2P 금융법에는 P2P 금융업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우선 가장 시급했던 등록규정이 신설된다. 그동안 P2P 업체는 3억원의 자본만 있다면 대부업체를 차려 P2P 영업을 할 수 있었지만, 법률이 시행되면 5억원의 자본을 가지고 금융위원회에 정식으로 P2P 금융업체로 등록해야 한다.
또 개인은 P2P 금융업을 할 수 없고 상법에 따른 주식회사만 P2P 금융업체가 될 수 있게 된다.
다만 입법절차 상 실제 등록된 P2P 업체가 등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 법은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 후 9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며, P2P 금융업체는 법 시행 이후 1년 이내에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면 되기 때문에 정식 등록업체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수수료·세금 뗀 이자율 공시해야
P2P 금융업체를 통해 대출을 받으려는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내용도 있다.
그동안 P2P 업체에서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율을 산정할 때 P2P 금융업체를 이용하는 수수료는 별도로 계산했다. 일부 대출상품의 경우 투자자들에게 차주가 '리워드'라는 명목으로 현물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이자율 계산에서는 빠져왔다. 일종의 사각지대여서 논란이 많던 부분이다.
하지만 P2P 금융법이 적용되면 수수료와 리워드 모두 대출이자로 계산된다. 투자자입장에서는 수익률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무분별한 고이율과 고리워드를 막는 것이 부실관리에 더욱 중요하다는 게 정무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투자자에게 수익률을 제시할 때 각종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한 '순수익률'을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됐다.
그동안 P2P 금융업체들은 상품을 홍보할 때 업체를 이용하는 플랫폼이용료를 제외하지 않고 수익률을 알려왔다. 관련 세금도 제외하지 않고 순수익률을 부풀렸다.
마치 식당에서 '부가세별도' 가격을 메뉴판에 제시하고 결제할 때는 부가세를 받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 투자금 보호 장치도 마련
각 투자상품의 회계처리를 분리하는 내용도 이번 P2P 금융법에 담겼다.
업체의 고유재산과 투자금, 상환금을 모두 별도의 예치기관에 예치하거나 신탁해, 만약 한 상품에서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투자자의 투자금이나 상환금은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했다.
또 투자자가 원리금수취권을 개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금지했다. P2P 금융업체에서 발생한 부실채권(NPL)을 개인이 마음대로 재판매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현재 일부 P2P 금융업체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이 사채시장으로 흘러간 사례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만약 NPL을 처리하려면 해당 P2P 금융업체의 플랫폼을 통해 NPL 전문투자자에게 양도를 할 수 있다.
또 동일 차입자에 대해서는 P2P 업체의 연계대출 채권 잔액의 10% 범위 이내로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내용도 담긴다. 이는 일부 P2P 업체가 사채업자들의 사금고처럼 사용되는 것을 막는 조치다.
◇ 사금고화 금지·'자체마감' 일부 허용
제도권 금융이다 보니 기존 금융회사들에 적용되던 규제도 이제 P2P 금융업체에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P2P 금융업체가 대주주의 사금고가 되는 것을 막도록 임직원과 대주주에 대한 연계대출 금지조항이 생긴다.
또 투자자 모집이 끝나기 전에 대출을 실행하는 것도 금지되며, 투자와 대출의 만기를 일치시켜 돌려막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도 생겼다.
대신 그동안 암암리에 시행되던 '자체마감'을 허용하기로 했다. 자기자본 연계투자를 일부 허용한 것이다.
법률로 정한 한도는 80% 이하다. 예를 들어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모집했는데 21억원만 모집된다면 나머지 79억원은 P2P 금융업체의 자기자본을 넣어서 채울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럴 경우 개인과 개인의 투자를 연결해준다는 P2P 금융이라는 본질을 흐리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관련 상품이 부실화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부족하다.
이에 대해 정무위 관계자는 "일단 법률 수준에서는 연계투자를 80% 한도로 허용해 주는 것이며 자세한 사항은 대통령으로 정해 규제를 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