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돈이 중심인 산업이다. 은행은 신용창조를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증권사는 증권의 거래를 통해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한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대가로 위험을 전가 받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대비하게 만든다. 이처럼 금융 산업의 각 영역은 돈을 중심으로 각자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한다. 물론 주 영역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만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지기도 한다.
보험 상품을 예로 들면 위험 대비를 위한 보장 목적 이외에도 저축과 노후 준비 등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각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본질이 훼손되어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금융 민원은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돈과 관련된 사안이기에 굉장히 민감하다. 따라서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각 영역에서 돈의 흐름과 적용되는 금리를 명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보험 상품에서 돈의 흐름을 단순화시키면 보험료가 사고를 만나 보험금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보험료가 보험금으로 전환됨에 있어 세 가지 금리가 적용된다. 공시이율과 최저보증이율 그리고 예정이율이다. 세 금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간단하게 분해해야 한다.
보험 가입의 근본 목적은 사고 시 보험금을 위해서다. 계약자로부터 위험을 전가 받은 보험사는 그 대가로 보험료를 받는다. 이를 위험보험료라 부른다. 예를 들어 암 진단비에 적립보험료를 부가하지 않고 20년 납 100세 만기 월납보험료가 7만원일 경우 매달 계약자가 보험사에게 납입하는 7만원이 위험보험료가 된다. 갱신형이 아닌 비갱신형으로 가입한다면 납입기간 20년 동안 월납보험료의 변동은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피보험자의 나이가 증가함에 따라 암의 발생 위험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연령에 비례하여 보험료가 증가하는 것이 맞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식과 평준식 위험보험료를 구분해야 한다. 연령에 따른 위험률 증가를 반영하여 각 연령별로 계산한 보험료가 자연식 위험보험료다. 해당 방식으로 보험료를 납입할 경우 매년 다른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이는 납입하는 계약자도 받는 보험사도 번거롭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평준식 위험보험료다. 매 연령마다 받아야 할 보험료를 가입시점의 연령 기준으로 계산하여 납입기간 동안만 매달 일정한 보험료를 내면 보험기간 전체에 걸쳐 위험을 보장받는다.
평준식 보험료의 경우 납입 초기에 자연식 위험보험료보다 높은 보험료가 계산되며, 특정 시기 이후에는 역전된다. 따라서 납입기간 중 받은 보험료를 사고 시점에 보험금으로 내어주기 위해 책임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이 책임준비금을 쌓을 때 적용되는 금리가 예정이율이다. 예정이율은 계약 체결 당시 정해지면 보험기간 전체에 걸쳐 변하지 않고 고정된다. 예정이율과 위험보험료는 반비례 관계다. 예정이율이 내려가면 동일한 책임준비금을 쌓는데 더 많은 보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오른다.
이 때문에 예정이율이 인하될 것이라 예상되면 그 전에 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하는 '절판 영업'이 성행한다. 또 다르게 해지환급금을 활용하여 보장성 보험을 저축목적으로 변용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책임준비금은 만기 시에는 0이 되지만 계약 기간 중 두 가지 경우로 계약자 또는 수익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하나는 사고 시 보험금의 형태로 수익자에게 지급되고 다른 경우는 계약 해지 시 해지환급금 형태로 계약자에게 지급된다. 예정이율은 고정되기에 계약 체결 당시 특정 시점의 해지환급금을 예상할 수 있고 이 금액이 납입 보험료 보다 높은 구간이 발생한다.
예정이율은 시중 예·적금 금리보다 상대적으로 높기에 이를 강조하여 특정시점에 해지하면 납입 보험료보다 높은 해지환급금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여 보장성 보험을 적금이나 연금처럼 제안하는 일이 흔하고 이로 인한 민원도 많다. 보험은 사업비를 선취하는 금융 상품으로 특정 시기 이전에 해지할 경우 납입 원금의 손해가 크게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해지환급금의 실현은 계약 해지를 전제하기 때문에 보험의 근본 목적인 보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해지환급금이 납입 원금을 넘어서는 구간은 꽤 긴 시간으로 이 기간 동안 포기하게 되는 현금 유동성 등 기회비용과 물가상승률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보장성 상품에 위험보험료 이외 적립보험료를 부가할 수 있다. 또한 저축이나 연금보험처럼 위험보험료가 없는 보험 상품도 존재한다. 적립이나 저축성 상품의 보험료에 적용되는 금리가 공시이율이다. 공시이율은 예정이율과 달리 매달 변하는 변동성이 특징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등을 고려하여 보험사가 정한다. 최근 관찰되는 장기 저금리 상황에서는 공시이율로 매우 낮아진 상태다. 따라서 계약 체결 당시 상대적으로 높은 공시이율로 계산된 예상 만기 환급금이나 예상 연금 수령액만을 강조하여 체결된 계약을 살펴보면 공시이율의 변동성으로 인해 최초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 관찰된다. 이로 인한 민원도 증가하지만 공시이율의 변동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공시이율이 시중 금리의 영향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우하향할 경우 최저보증이율이 적용될 수 있다. 최저보증이율은 이름 그대로 공시이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보험사가 특정 금리 적용을 보증하는 마지노선으로 이해하면 된다. 계약 체결 당시 사업방법서에 보험 기간 별 최저보증이율이 미리 정해져 있기에 확인할 수 있다.
살펴본 것과 같이 보험료가 보험금 또는 해지환급금 그리고 만기환급금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세 가지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해당 내용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일반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기에 상품설명부실로 인한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보험을 보장 이외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본연의 목적으로 가입되고 사용될 때 가장 효용이 크며 민원을 줄일 수 있다. 누군가 보장 이외 다른 목적에 대한 달콤한 말을 전할 때는 항상 주의가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