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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실손의료보험의 뒤안길

  • 2020.11.09(월) 12:00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입한 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다. 하지만 공보험을 제외하면 가입률이 가장 높은 보험은 실손의료보험이다. 약 3400만명이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모든 자동차소유자에게 일정 부분 가입을 강제한 자동차보험보다 많다. 의무보험보다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실손의료보험은 만능보험으로 인식된다. 질병이나 상해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조제, 통원, 입원을 보장한다. 가입 시기별 약관의 차이는 있지만 보장하는 사고의 범위는 매우 넓다.

가입률이 높은 이유는 국민건강보험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병원에서 치료 후 수납을 하면 영수증을 받는다. 이를 살펴보면 급여와 비급여로 구분된다. 급여 일부는 건강보험으로 처리된다. 실손의료보험은 건강보험으로 처리하지 못한 급여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보장한다. 물론 가입 시기별 약관에서 정한 자기부담금이 존재한다. 이처럼 공보험에 연동되기에 높은 가입 및 활용률이 관찰된다.

실손의료보험은 보험 산업의 슈퍼스타이자 이슈를 몰고 다니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2000년대 이후 손해보험사의 급격한 성장에 있어 촉매 역할을 했다. 손해보험사 순이익 증대는 계속보험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제3보험 진출에서 시작되었다. 이 배경에는 우선 자동차보험이 존재한다. 차량 등록대수 증가는 곧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의 확대로 이어졌다. 손해보험사는 생명보험사와 비교 손쉽게 보유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확보된 가망고객에게 제3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입구 역할을 한 것이 실손의료보험이다.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냈던 돈을 돌려 준다'는 말은 모든 이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또한 실손의료보험은 돈을 먼저 내고 그 증거로 받은 영수증이 있어야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후청구 약관이다. 이를 통해 암과 심장질환 그리고 뇌혈관질환의 진단과 관련된 보장을 추가적으로 제안하기에도 쉬웠다. 따라서 실손의료보험 '끼워 팔기'가 금지되기 이전까지 손해보험사의 통합형 상품 판매량을 이끌었다. 의무보험도 아닌데 소비자가 먼저 가입을 원하는 실손의료보험을 설명한 후 통합형 상품에 있는 다른 특약도 설명하는 것이 손해보험사의 주된 생존담보 제안 전략이었다.

2013년 3월 31일은 3년 갱신 100세 만기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면 한 명의 설계사가 한 달에 200건이 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한국보험역사상 가장 큰 절판 이슈 시장이 펼쳐졌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실손의료보험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실손의료보험은 감기 등 피해가 크지 않은 질병 및 상해 사고의 소액청구가 흔하다. 청구를 통해 가입자와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추가 계약을 제안하는데도 널리 활용되었다.

하지만 보험금 청구로 인해 실손의료보험은 예전 같은 영향력을 상실했다. 2009년 10월 실손의료보험 표준화가 단행되었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 손해율 방어를 위해서였다. 실손의료보험의 등장은 치료비 부담 경감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병원 방문 횟수가 증가했고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손해율을 악화시키게 된다. 정부는 실손의료보험 표준화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손해율을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이후에도 실손의료보험의 표준약관 개정은 건강보험의 손해율 관리를 배경에 두고 진행되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의료복지확대가 정부 정책의 중요한 기조다. 이로 인해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의 손해율을 견인하던 형국이 역전된다. 이제 건강보험의 급여확대가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 악화를 가속화시킨다. 따라서 최근 약관 개정은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을 방어하려는 배경이 크다. 이미 실손의료보험은 많은 사람이 가입하여 활용 중이지만 손해율로 갱신 시 보험료 인상이 클 경우 노후 의료비 지출이 크게 증가할 때까지 계약 유지가 불가능한 위험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을 보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팔면 손해가 발생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해당 상품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도 다수다. 또한 과거처럼 다른 상품의 판매를 유도하는 미끼상품으로 활용하는 것도 어려워진 상태다. 이제 실손의료보험은 과거의 영광은 뒤로한 채 서자취급을 넘어 호적에서 지워지는 수모를 경험하고 있다. 설계사 입장에서도 단독상품으로만 중개할 수 있어 수수료가 너무 적다. 이 때문에 '차비도 안 된다'는 푸념도 존재한다. 실손의료보험은 이제 보험사와 설계사의 손을 떠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실손의료보험의 효용은 매우 크다. 암과 심장 및 뇌혈관질환 등 치료비가 많이 발생하는 사고를 대비하는데 기초가 된다. 또한 사망 사고 전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제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에서 시선을 돌려 질병사고 발생확률이 높아지는 연령까지 계약을 유지할 방법을 고민할 시기다. 내년 자동차보험처럼 보험금 청구 여부에 따라 보험료 조정이 가능한 실손의료보험이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 해당 개정이 높아지는 손해율을 얼마나 방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지하기에는 부담이 커버려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보험사도 정부도 손해율을 잡아내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이 때문에 개인의 계약 유지 부담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국민건강보험과의 연동 속에서 의료복지확대 등 정책적인 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해결책이 등장하기 전까지 실손의료보험의 가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사고라는 불청객이 언제 방문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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