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 인하 유도를 위해 2017년 9월 야심차게 출범한 '공·사보험 정책협의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文케어)'에 따른 실손보험 반사이익 효과가 미미한데다 산출 기준이 매번 바뀌는 등 신뢰도가 낮아 수년간 헛발질만 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 부풀려진 숫자 2.42%
급여와 비급여는 건강보험 적용 여부로 갈린다. 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비를 일부 지원하며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본인이 100%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이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 공동 주재로 이뤄진 공사보험 정책협의체는 2020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효과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실손보험금이 '2.42% 감소했다'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7월, 2018년 5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급여화 된 항목(뇌혈관·두경부 MRI, 하복부·비뇨기계 초음파 등)을 대상으로 11월과 12월 두달 간의 변동분을 기준으로 실손보험금 감소효과를 산출한 결과다.
그러나 전체 실손보험금 지급 상황에 비춰보면 이는 부풀려진 숫자다. 실손보험금으로 지급되는 보험금은 급여 본인부담이 35% 비급여가 65%에 달하기 때문이다.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바뀌며 낮아진 의료비만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전체 지급보험금으로 산출해 계산할 경우 0.83%로 1%도 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효과를 부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치를 높게 부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 역시도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뇌혈관 MRI를 예로 들면 비급여에서 급여로 전환되며 의료비가 10만원대로 낮아졌지만 이전 비급여 금액이 병원급별로 차이가 있어 대강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잡았다. 비급여 금액이 표준화돼 있지 않고 이를 다 파악하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비급여에서 급여로 줄어든 금액부터 가정이 들어간 만큼 반사이익 수치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반사이익 효과를 계산한 KDI 연구진 역시 "추가적인 비급여 의료서비스 이용 확대 및 풍선효과를 반영하려했으나 개별 사례로만 확인되며 계량화가 어려워 수치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전체 지급보험금 대비 보험금 규모 감소율은 급여항목에 대한 실손보험 지급보험금이 전체 지급보험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고 했다.
◇ 예상 반사이익 6.15%, 실제 효과는 10분의 1
2017년 문케어 시작 이후 정부는 매년 반사이익 효과를 실손보험료 인하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시행 첫해에는 반사이익 규모가 산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듬해 실손보험료 동결을 지시했다. 구실손의 위험손해율은 이미 133.8%에 달했고 전체 손실이 1조3000억원을 넘긴 해였다.
2018년도에는 6.15%라는 첫 반사이익 수치를 발표했지만 이는 결과치가 아닌 예상치였다. 실손 손해율 증가로 보험업계는 이듬해 두 자릿수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당국은 예상치인 6.15%를 차감한 인상률을 반영토록 했다. 이에 구실손과 표준화 실손보험은 6~7% 인상, 신실손(착한실손)보험료는 6.5%~7% 가량을 인하했다.
가격 통제가 이어지며 2019년 실손보험 손해율은 140%대까지 치솟았다. 신실손 손해율도 100%를 넘겼다. 받은 보험료 대비 내준 보험금이 더 늘어나며 적자폭이 심화된 것이다.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의료계가 새로운 비급여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커진 결과다. 업계는 15~20% 가량의 보험료 인상 요구했다. 당국은 자료의 대표성 문제로 반사이익 효과를 밝히지 않았으나 한자리수 내 인상을 압박해 보험료는 8~9%대 인상에 그쳤다. 신실손은 9.8% 인하했다.
그러나 예상과 실제의 괴리는 컸다. 2018년 산출한 반사이익 예상 규모는 6.15%였으나 이후 협의체가 산출해 발표하지 않았던 반사이익 효과는 0.6%로 나타났다. 예상치를 반영해 보험료를 미리 조정했지만 실제 반사이익 효과는 예상치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가들은 협의체가 몇 년간 헛발질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는 "2019년도 실제 지급된 실손보험금을 기준으로 반사이익을 산출했으나 감소효과가 예상보다 적제 나오자 기준의 대표성 등을 문제 삼으며 기준을 변경했다"며 "2020년에는 지급된 보험금이 아닌 건강보험 급여 데이터를 기준으로 산출방식을 바꿨지만 실제 이전 방식이 더 구체적인 산출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급여의 본인부담 부분은 실손보험에서 35%정도만 차지하는데다 이조차 여러 가정을 적용해 산출하다 보니 산출 후 이번 방법 역시 기준이 명확치 않아 다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사실상 비급여 표준화 통계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떤 산출기준을 삼아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 '문케어' 목표달성 지지부진한데…4세대 실손 효과 거둘까
문케어를 통해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9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4.2%로 전년대비 0.4%포인트 오르는데 그치며 지지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비급여를 급여화하면서 의료계가 다른 비급여 항목을 늘리거나 비급여 비용을 높여 급여보다 비급여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이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금융당국은 복지부 등과 협의해 실손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일부 가입자에게 실질적인 부담을 지우는 할인할증 방식의 '4세대 실손보험'을 오는 7월 선보일 계획이다.(관련기사 ☞ [보험정책+]4세대 실손 전격 해부…갈아탈까?) 문제는 구실손과 표준화 실손 가입자가 여전히 80% 이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기존 가입자들이 얼마나 이동할지 여부다.
기존 실손보험과 새로운 실손보험 간 보험료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가입자들이 새로운 보험으로 이동해 기존 가입자가 줄어드는 방식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손해율에 따른 보험료 인상이 계속될 경우 기존 실손보험은 의료이용이 많은 사람들이 남게 되고 다른 가입자에게 보험료 전가도 어려워져 개별 보험료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사실상 보험료 인상 폭탄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높아지는 보험료를 견디지 못한 의료이용이 낮은 사람들이 계속해 새로운 실손보험으로 이동하면 실손보험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당국과 보험업계의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전환 시 보장이 확대되는 부분 이외에는 언더라이팅(계약심사과정)이 이뤄지지 않는 만큼 기존 병력이나 청구이력이 어느 정도 있어도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며 "다만 기존에 보험금 청구이력이 많은 가입자는 이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의료이용이 많은 가입자들만 남게 될 것으로 보는데 현재로서는 기존 계약규모를 축소해 전체 실손계약을 관리하는 방향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업계에 올해 실손보험료 인상률을 10%대로 제한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은 당초 20%대 수준 인상을 예고했으나 당국이 구실손은 80% 수준, 표준화실손 60%, 신실손은 동결하라는 입장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실손은 15~17%, 표준화실손 10~12% 수준의 보험료 인상이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