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조합이 무서운 기세로 변화를 주도한다. 금용 산업 전반에 걸쳐 핀테크(FinTech) 열기가 확산 중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중심이 되면서 산업 구조 개편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은행, 증권, 카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로 무장한 채 변화의 중심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보험은 무엇인가 뒤쳐진 느낌이다. 새로운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금융 산업 전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모두 전통적인 대면채널을 통한 신계약 체결률이 90%가 넘는다. 이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손 안에서 이뤄지는 시대에 보험만 전통을 수성하고 있는 것인지,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타 금융에 비해 보험 산업의 변화 속도가 느린 이유는 '가입 후 즉각적인 효용이 발생하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보험료는 사고를 만나야 보험금으로 전환된다. 보험금의 전제조건인 사고는 불확실성 위에 존재한다. 계약 체결 및 유지에 사용되는 비용인 보험료는 사고를 만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누군가 사고 발생의 위험을 환기하지 않는다면 불확실한 사고를 위해 현재 지출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신계약 체결에 있어 대면채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타 금융은 계약 체결 후 효용 발생 사이의 간격이 좁다. 이 점은 기술 발전을 흡수하기에 유리하다. 가령 은행업에서 개인 여신(與信)을 카카오뱅크가 장악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는 행위는 자존심을 버리고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행위다. 담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신용을 증명할 길이 요원하다. 따라서 채권자가 될 누군가에게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내어놓고 자신의 절박함을 호소하며 상환을 약속할 수 있는 대상은 관계가 맺어진 지인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근대 금융이 발전하면서 신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은행 창구에서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도 은행 직원을 대면해야하며, 신용을 통해 얼마의 돈을 대출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카카오뱅크는 얼굴을 팔지 않고 손 안에서 1분 만에 내가 빌릴 수 있는 돈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게 만들어 준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큰 효용은 돈의 지급이다. 대출 계약 전 과정의 신속함과 계약 후 즉시 진행되는 입금은 개인 여신에서 카카오뱅크가 급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카드도 신용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며, 은행보다 앞서 손 안으로 들어온 금융이다. 당장 현금이 없어도 신용에 기초하여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은 기술이 침투하기에도 유리한 구조다. 소비자의 효용이 즉각적이면 전통적인 중개 방식이나 계약 체결 이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 동기가 된다.
소비자가 계약 체결의 동기를 적극적으로 느낄 때도 기술 접목은 쉽다. 이는 주식 거래가 일찍 모바일 기반으로 대체된 예에서 찾을 수 있다. 투자 성과는 보험 사고처럼 불확실하지만 직접 거래를 원하는 적극적인 투자자는 빠르고 간편한 거래 방법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보험 산업에서 자동차보험만 유일하게 다이렉트 채널에서 성장 중인 이유는 결국 의무보험이기 때문이다. 강제로라도 가입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대면 채널 이외 방식이 선호된다. 하지만 비의무보험의 상황을 살펴보면 당장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계약 후 즉각적인 효용이 발생하거나 자의 혹은 타의든 체결이 필요할 때 중개 방식의 변화가 쉽다. 물론 보험도 소비자가 간절하게 원하는 시기가 존재한다. 사고 직후인데, 보험금의 전제조건은 사고도 있지만 계약 유지가 기본이다. 사고가 발생한 피보험목적물을 인수할 보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효용이 불확실하고 즉각적이지도 않는 보험을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때문에 계약 체결을 설득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이 구조가 비대면 채널의 성장을 더디게 만든다.
누구든 미래 보험 산업에서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담보로 현재 소비를 강요할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기술이 영향력을 행사할지, 콘텐츠가 소비자의 공감을 살지, 아니라면 지금처럼 설계사 등 대면 채널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어찌되었건 기술 발전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거래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누가 향후 보험 산업의 시작인 계약 체결을 이끌어 낼지 알 수 없지만 정답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쪽이다. 보험료와 보험금 사이의 큰 간격을 메울 만큼 매력적이면 그것이 기술이든, 콘텐츠든, 사람이든 상관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