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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설계사 모집과 정착률 그리고 소비자 피로

  • 2020.12.21(월) 09:30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전속 설계사의 정착률은 생명보험 38.2%, 손해보험 53.3%다. 수치만 보면 설계사를 시작한 10명 중 5명 이상이 1년 내 그만둔다. 하지만 전산에 등록된 인원이 아닌 실제 평균 이상의 소득을 받는 설계사로 한정한다면, 사실상 10명 중 1~2명만 정착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험연구원의 또 다른 자료를 참고 하면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전속 설계사의 평균 월 소득은 각각 336만원과 299만원이다. 물론 설계사 모집을 위해 SNS에 자주 등장하는 월 1000만원 이상 수수료를 받는 설계사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설계사도 생명보험 26.5%와 손해보험 26.2%나 된다. 특히 3년 미만 설계사의 경우 평균 소득 이하자의 비중이 높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의 폐업률과 실직한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 관련하여 보험 해지율도 급증한다. 하지만 신인 설계사를 모집하는 리크루팅 시장은 뜨겁다. 당장 소득이 절박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진입장벽이 낮은 보험 설계사는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직업으로 선택된다. 실제 생명과 손해보험 고유 영역의 자격과 공통영역인 제3보험 자격을 취득하면 설계사를 시작할 수 있다. 시험도 크게 어렵지 않다. 대부분 보험사는 설계사 자격시험 및 업무 시작을 위한 교육을 한 달 정도 둔다. 쉽게 영업일 수 기준으로 20일 정도만 투자하면 누구나 설계사를 시작할 수 있다.

비교적 쉬운 과정을 통해 자격을 취득하고 설계사를 시작하면 6개월 정도는 문제없이 신계약 체결을 통해 수수료를 받는다. 보통 설계사 코드 등록 후 1차월 마감을 본인 계약으로 시작하여 가족과 친척 그리고 진짜 친한 지인에게 도움을 받아 신계약을 수납하기 때문이다. 각 보험사 별로 13차월 미만인 신인 설계사는 별도 수수료 규정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 1~2건의 계약으로도 업계 평균 정도의 수수료 매출이 보전된다. 따라서 초기 몇 달은 설계사 정착에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변 지인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넘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시장이 포화되어 있기에 기존 설계사와 경쟁하여 가망 고객을 유치해야 하지만 이는 신인 설계사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신계약 동력이 상실되어 13차월 설계사 정착률이 낮은 것이다. 실제 리크루팅 방향을 살펴보면, 신입 설계사를 많이 선발하는 것에 치중하고 이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무형의 보험 상품을 설계하고 모집하는 행위에는 많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당장의 매출에만 급급하다보니 체계적인 교육이나 성장을 위한 지원이 턱 없이 부족하다.

살펴본 신입 설계사 정착과 관련된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신인 설계사가 초기에 수수료 매출을 쉽게 올리는 이유는 주변의 도움 때문이다. 인맥으로 인해 계약을 체결했지만 설계사를 그만두면 소비자 입장에선 계약을 관리할 주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계약을 흔히 '고아계약'이라 부른다. 고아계약 증가는 대면채널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를 낮추는 주된 원인이다. 주변에 설계사를 시작한 사람이 생기면 연락을 피하는 것은 이런 경험이 중첩된 결과다.

따라서 신입 설계사를 뽑은 후 '알아서 살아남도록 방치'하는 대면채널의 관행은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촉매로 작용한다. 과거에야 보험 산업이 성장기였고, 대면채널이 유통망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이런 문제가 반복돼도 무시되었다. 하지만 최근 대면채널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높아지고 비대면 채널이 부상하여 소비자 채널 선택권이 넓어진 시기에는 다르다. 단기 성장만을 위해 무분별한 설계사 리크루팅이 지속된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대면채널이 감수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산업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비대면이 대세로 부상하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던 것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면채널이 소비자 신뢰를 얻고 산업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신인 설계사의 정착률 재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제대로 된 교육과 지원을 병행하고 많이 뽑아서 살아남는 소수를 지향하는 양적 리크루팅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험은 호흡이 가장 긴 금융상품이다. 특히 한국 보험 산업은 장기보험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대면채널이 아직 유효한 이유는 장기 계속 보험료 수익의 원천이자 인맥으로 연결된 막강한 유통망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 성과만을 위하고 정착을 보장하지 못하는 신입 설계사 위촉은 대면채널의 지위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동일하게 한 명의 설계사를 제대로 키워 정착시키는 것에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면채널의 성장이 양적 확대에만 있지는 않다. 소비자를 위한 질적 성장의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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