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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과 디지털 전환]①MZ세대 못 잡으면 '암울'

  • 2021.03.12(금) 08:30

수익성·성장성 계속 하락, 소비자신뢰도 낮아
디지털 소비자 익숙한 빅테크와 경쟁도 부담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파괴적인 혁신 필요

만약 1억원이 있다면 보험산업보다는 차라리 반 이상이 문을 닫은 소공동 지하상가에 투자해라.

여느 투자전문가의 말이 아니다. 한국보험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오랫동안 보험산업을 지켜봐온 김헌수 순청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의 냉철한 평가다. 김 교수는 최근 보험연구원이 개최한 '포스트코로나 시대 보험산업 대토론회' 세미나에서 '보험산업 지속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소공동 지하상가는 다시 부활하겠지만 보험산업은 과연 그만큼의 회복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비롯한 지적이다. 보험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논할 만큼 위기 상황에 놓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보험산업의 위기는 다양한 시그널로 나타나고 있다.

# 성장성·수익성·소비자 신뢰 다 망가져

보험사의 성장성 지표인 수입보험료(원수보험료)는 계속 늘고 있지만 초회보험료 성장률은 어느 순간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신규 계약은 증가세가 꺾였는데, 기존 보유계약의 꾸준한 보험료 유입이 수입보험료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착시효과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보험개발원 자료를 근거로 한 초회보험료 성장률 추이를 보면 2013년 이후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수입보험료 성장의 90%가 기존 보유계약에서 나오면서 성장성에 대한 착시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결산 때마다 채권재분류 등 회계처리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는 것 역시 성장성 착시에 빠트리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수익성 지표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국내 보험산업의 자본이익률(ROE)은 10년 동안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2019년 생보사 ROE는 3.87%에 그치면서 2009년 9.07%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같은 시기 일본의 12.3%, 미국의 7.0%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손해보험도 2009년 14.4%였던 ROE가 2019년에는 5.5%로 크게 떨어졌다.

무엇보다 산업의 지속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신뢰가 바닥을 기면서 수십 년째 보험산업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있다.

# 디지털 못 잡으면 10년 뒤엔 '암울'

김헌수 교수는 "디지털 소비자를 잡지 못하면 10년 뒤 보험산업의 미래가 암울한데도 현재 상황만 보고 괜찮다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란 질문도 던졌다.

특히 디지털 소비자 이른바 'MZ세대(1980~1990년대 중반에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생인 Z세대를 통칭하는 말)'는 과거 소비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빌리티와 헬스케어,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화의 토대가 마련된 가운데 코로나19로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디지털로 생활의 대부분을 영위하는 MZ세대의 소비 방식이 전 세대로 매우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서다. 

금융시장에서 기존엔 잠재고객으로 머물렀던 MZ세대가 주력고객으로 부상한 이유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극디지털세대'로 불리는 MZ세대의 특징으로 ▲자기 효능감이 높고 재미를 추구 ▲짧은 호흡과 속도감, 변화·변주를 선호 ▲온라인을 통한 연대 추구와 함께 ▲높은 교육수준 대비 낮은 소득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재테크 금융서비스에 관심이 많다고 분석했다.

이들에게 최적화한 플랫폼과 관심분야에 맞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보험산업의 위상은 현재와는 매우 다를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문제는 보험상품 자체가 MZ세대의 성향과는 다른 장기성 상품이 대부분인데다 코드가 맞는 '미니보험'만으로는 현재 수익성을 이어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더욱이 미니보험 시장은 인슈어테크나 소액단기보험사 등 대체 공급자들이 많이 나올 수도 있다.

보험산업은 저금리·저성장·저출산 환경의 장기화를 비롯해 비대면 문화 확산, 인슈어테크·빅테크의 시장 진입, 자본규제 변화에 따른 상품·채널의 구조개혁 필요성 등 이미 가지고 있는 과제만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과 소비자보호 강화 기조는 기존 보험산업 체제를 완전히 뒤바꿔야 하는 급진적 변화와 요구에 직면해 있다.

# 과연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보험산업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생존과 함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박소정 서울대 교수는 "국내 보험산업이 성장성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한 건 맞지만 긍정적인 부분은 '위험'이 있는 한 보험산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보험산업이 축소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위험의 종류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기사망 리스크(위험)와 출산율이 하락하면서 이를 담보하는 생명보험의 성장 정체는 변화시킬 수 없는 문제"라면서도 "반대로 장수위험과 요양위험, 디지털화로 인한 사이버리스크 등 새로 생겨나는 위험들이 있는 만큼 '보험' 자체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헬스케어와 스마트홈 기기(IoT, 사물인터넷), 자율자동차 등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에서 보험이 또다른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보험과 연계하거나 공보험의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민영보험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환 동아대 교수는 "공보험은 구조적으로 청장년층에 부과해 노인에게 부여하는 구조인데 인구 감소로 이 구조가 장기적으로 유지될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라며 "보험사와 보험의 역할을 할 대체재가 나온다면 반대로 보험은 공보험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보험 소비자나 유통 방식이 전반적으로 바뀌면 기존 보험사가 가진 '네임밸류'의 의미가 사라지고 새로운 재편이 일어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소비자들이 보험사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물건이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단계에서 자동으로 보험서비스를 받도록 연계하는 방식이 고도화되면 굳이 소비자가 보험사를 확인할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방범업체와 계약하면서 화재보험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골프장을 예약할 때 골프보험을 포함하는 식이다. 보험사 플랫폼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보험 가입이 이뤄질 경우 다른 산업 플레이어들과 결합해 보험서비스를 확대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디지털 전환'이란 과제가 있다. 더 근본적으론 이와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소비자 신뢰'라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보험사들의 전략과 한계, 문제점과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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