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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과 디지털 전환]②이제 막 디지털화 넘어선 '초입' 단계

  • 2021.03.23(화) 14:56

공급자 벗어난 소비자 중심 혁신 요구돼
유리한 고지 선점한 빅테크와 경쟁 준비
새규제 도입해 불필요한 기회비용 줄여야

보험산업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달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디지털 전환은 올해 보험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앞 다퉈 생존 키워드로 꼽을 만큼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포화된 시장과 변화하는 환경, 거대 경쟁자가 출현하는 상황에서 혁신이 없으면 생존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보험산업이 올라탄 곳은 열차의 꼬리 칸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엔진이 있는 맨 앞 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을지 모를 수많은 칸들을 헤쳐나아가야 한다.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말처럼 눈앞에 다가와 있는 현실은 아니라는 얘기다. 

◇ 이제 초입, 멀고먼 디지털 전환의 길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화에서 디지털 전환으로 넘어서는 초입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규 진입이 어려운 규제산업인 만큼 위기의식이 크지 않아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단순 전산화(Digitiz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는 차별화된 개념이다. 전산화는 기존에 종이문서로 돼 있던 아날로그 정보들을 디지털 정보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정보를 디지털화 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정보의 보관, 검색, 활용이 용이해졌다.

이후 보험산업은 디지털화에 집중해 왔다. 이른바 '차세대시스템'이라고 명칭하며 보험사 내부의 많은 부분들을 전산화하고 불편한 프로세스들을 디지털을 접목해 개선하면서 사업운용과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디지털화는 디지털 정보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기업, 즉 공급자 중심의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주 골자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이 아니다. 기존 질서인 공급자가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사업모델의 주축을 바꿔야 한다. 기존의 질서, 전통적인 사업모델과 서비스를 아예 새롭게 변화하려는 '혁신'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의 개념 - 보험과 디지털전환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 기술 발전과 문화의 확산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ABCD'라 일컬어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블록체인(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분산원장기술) 등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대표 기술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보험산업 역시 이같은 기술들을 접목해 다양한 변화와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더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규제를 비롯해 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앞선 빅테크와의 경쟁, 생존 가능할까 

보험의 디지털 전환 요구가 긴급하고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디지털 전환 시대 새롭게 등장할 경쟁자들이 훨씬 더 유리한 조건에서 보험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혁신을 추구해 왔다. 보험금 청구 간소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안전운전 할인특약 등 기술을 접목해 기존보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집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만으로 '파괴형 혁신'을 몰고 올 신규 시장 진입자들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관련기사 ☞[보험과 디지털 전환]①MZ세대 못 잡으면 '암울')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는 이미 보험정보만이 아닌 소비자 생활전반의 다양한 정보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플랫폼이라는 거대 소비자 접점과 충분한 여력의 자본도 확보하고 있다. 레모네이드, 메트로마일, 보맵, 토스 등 인슈어테크, 핀테크사들 역시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들로 보험시장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이들은 틈새시장에서 시작해 전체 시장을 공략하는 파괴형 혁신을 통해 보험사들을 위협하며 시장을 점유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보험시장의 신규진출이 어려웠지만 카카오의 디지털손보사 진출과 소액단기보험사 설립 조건 완화 등 새로운 보험업 허가정책이 마련됐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는 과거처럼 보험사와 협업 없이는 진출할 수 없는 시장이 아닌 무한경쟁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보험사들이 기존의 고객정보만을 가지고 있다면 빅테크는 다수 소비자의 거대 생활정보와 시장정보를 보유하고 있어 정보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있다"며 "고객접점을 비롯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만족시킬 가능성 측면에서도 플랫폼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기업 중심의 운영을 해왔던 보험사와 소비자 접근 분석으로 시장을 키워온 플랫폼산업의 특성 차이도 향후 경쟁력에 있어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전환 구조 하에서 보험사들이 더 불리한 구도에 놓여있는 만큼 더 큰 노력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혁신 가로막는 규제, 새 규제로 교체해야 

기존 보험산업을 바탕으로한 규제 전반의 변화도 요구된다. 보험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더딘 것이 규제 영향도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최근 디지털 전환의 일환으로 OCR(Optical Character Reader, 광학식 문자판독장치) 기술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보험금 지급 요청을 위한 병원 의료비 영수증, 진단서 등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문자인식 기술로 보험금청구 자동화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노력들이 규제로 인해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OCR의 인식률을 100%로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OCR 기술은 기술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업체에서도 100%로 인식률을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고객들이 서류를 바로 사진으로 찍거나 스캔하지 않고 접어 보관한 뒤 처리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상 병원에서 서류를 바로 보험사에 전달하면 간단하고 비용도 덜 들지만 의료계 반발 등으로 규제 길이 막혀 있다"라며 "사실상 안해도 될 곳에 쓸데없는 비용과 역량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장의 요구만큼 빠른 속도와 방법으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금융당국이 디지털 전환을 위한 규제 개선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어서 디지털 전환 속도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금융당국은 최근 ▲디지털보험사와 소액단기보험사 등 새로운 보험업 허가정책을 마련하고 ▲헬스케어 서비스 활성화 ▲실손의료비 청구 전산화 ▲보험회사의 본질적 업무 위탁 방안 검토 ▲비대면 인증 서비스 활성화 ▲모집채널 전면 재정비 등 디지털 전환을 더디게 만들어왔던 규제들에 대한 정비에 나서고 있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신규사업자 진출이 막혀 파괴적 혁신이 더뎠던 만큼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 초보단계"라면서도 "디지털보험사의 신규출현, 소액단기보험사 설립 등 디지털 전환에 대한 당국의 규제개선 의지가 강해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들은 외형성장 전략을 벗어나 기술과 데이터를 외부에 종속하지 않는 방향의 장기 디지털 전환 전략을 세워야 하며, 금융당국 역시 전통적인 보험상품과 판매채널을 위한 보험규제를 과감히 버리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보험사들이 새로운 진입자들과 경쟁하며 보험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빅테크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우위에 따른 독과점 가능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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