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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정책+]강남 아파트 한채 값이면 보험사 설립?

  • 2021.04.02(금) 09:46

자본금 20억원이면 소액단기보험사 설립 길 열려
자본금 외 조건은 동일…전산시설 등 비용 부담 커
허울 뿐인 제도로 남을까…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와

"가난한 구단이 우승을 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난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영화 <머니볼>에 나온 대사다. 최근 금융당국은 머니볼의 대사처럼 보험사들의 경쟁과 혁신을 선도할 새로운 플레이어 진입을 위해 '소액단기보험사'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높은 자본금 등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보험시장에 새로운 문이 열렸다. 기존 종합보험사의 자본금 요건은 300억원에 달하는 반면 소액단기보험사의 자본금 요건은 20억원에 불과하다. 기존 대비 진입 장벽이 15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 셈이다. 

소액단기보험은 보험기간이 1년으로 취급종목은 자동차와 원자력 등 고액의 자본금을 요구하거나 연금·간병과 같이 장기간의 보장이 요구되는 종목을 제외하고 모든 보험 종목을 취급할 수 있다. 

펫보험과 날씨보험 등을 동시에 취급할 수 있으며 손해보험 종목과 질병, 상해보험 등을 포함하는 제3보험도 같이 겸업할 수 있다. 다만 계약당 최대보험금은 5000만원, 수입보험료 규모는 연간 500억원으로 제한했다. 

소액단기보험사 설립 인허가 요건

◇ '자본금'만 축소 이외 보험사 설립 요건 '동일' 

시장에서는 기간이 짧고 가격이 저렴해 고객 접근성이 높은 일명 '미니보험' 시장이 획기적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낮아진 장벽은 '자본금'만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이 은행 다음으로 자산 규모가 큰 금융업권인 데다 가입 심사와 보상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부분이 필요한 영역인 만큼 소비자보호를 위해서는 자본금 이외 모든 설립 요건이 기존 보험사와 같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모펀드 사태 등 최근 진입 장벽을 낮춘 금융업권에서 연이어 사고가 터진 데다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보험업'을 영위하려면 당연히 갖춰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규 시장진입자로서 가장 큰 부담은 바로 보험사 설립 요건 중 인력·물적시설 부분이다. 특히 전산시스템을 비롯한 물적시설의 비용 부담이 크다. 

◇ 인력·전산설비 요건 비용 부담 커

보험사는 보험업법상 보험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무실과 영업시설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전산시설은 보험업 경영을 위해 필요한 전산시스템, 메모리, 중앙처리장치, 각종 전산 서버를 비롯해 방화벽과 주요 본체 장비에 대한 예비 백업장치, 통신회선의 이중화, 백업시스템 등 다양하다. 

이를 모두 갖춰야 하며 보안시스템, 프로그램, 전산 자료의 관리 방안, 가입자 보호 대책, 복구절차 등 비상계획 수립, 해킹방지를 위한 보안시스템 설비, 암호화 등 전산설비 운영에 대한 심사 기준도 까다롭다. ▷ [인포그래픽]미니보험사 만들고 싶다면

인력 요건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보험사는 전문인력으로 준법감시인(1명), 선임계리사(1명), 손해사정사, 전산인력, 보험영업·계약인수·보험금 지급심사 등의 업무 인력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 

준법감시인, 선임계리사 요건도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금융사와 보험계리업무를 10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어야 하며, 최근 5년간 문책경고 등 조치나 제재를 받은 적도 없어야 한다. 임원도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은 자만이 보험사 임원 자격을 갖는다. 

인력·물적 요건을 충족하는 데에만 자본금을 뛰어넘는 금액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국은 보험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올 신규진입자를 받아들인다면서도 무분별한 보험사 설립은 막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액단기보험사 제도 도입은 신규 소형 보험사 100여 개를 더 늘리겠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IT기술을 갖춘 곳이 책임감을 갖고 보험업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무분별한 확장은 국내 보험시장 규모에도 맞지 않고 이미 자본금 규모를 낮춘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나 민원이 많다"라고 말했다. 

소위 '강남아파트 한 채 값'으로 보험사를 만들고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소액단기보험사가 100여 곳을 넘어섰지만, 이는 공제라는 기본 틀 안에서 보험사로 전환한 형태여서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국내 상황과는 다르다는 게 당국 입장이다. 

◇ 신규사업자 진입 어렵고, 기존 보험사들 관심없어 

이 때문에 금융당국과 시장, 보험업계가 바라보는 소액단기보험에 대한 온도차는 극명하다. 미니보험 시장 확대를 기대했던 시장의 온도는 달아올랐다 꺼지는 모양새다. 기본적인 보험업 영위를 위한 비용 부담은 차치하고라도 기존 금융권이 아닌 사업자들의 보험업 겸업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체가 반려동물보험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소액단기보험사를 만들 경우 반려동물 영양제나 간식 판매를 부수업무로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국은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보험사의 부수업무나 자회사 허용 여부는 원칙적으로 보험업과 연관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업과 다른 사업의 겸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규모나 금액이 소액이라고 해도 보험업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갖춰야 할 부분이 많은데 다른 사업과 병행할 경우 안정적인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스탠스는 '조심히', '천천히'다. 보험업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보험시장에 혁신을 가져올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존 금융권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손해보험사를 보유하지 않은 금융지주나 생명보험사 등이 관심을 내비치고 있지만 '미니보험'의 경우 시장이 작아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미니보험을 판매하고 있지만 사실상 수익이 나지 않는 상품들"이라며 "이미 디지털 보험사들이 출범했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기존 보험사들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할 유인이 거의 없고 사실 관심도 대부분 없다"라고 말했다. 

요건을 갖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금융사들은 오히려 소액단기보험에 대한 관심이 낮아 자칫 소액단기보험 시장이 허울뿐인 정책으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보험사의 인허가 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자본금을 제외한 모든 인프라 요건을 보험사와 같게 구축해 시작한다는 것은 기존에 금융사가 아닌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며 "허울뿐인 제도로 남을지, 시장이 정착될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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