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가 9년 만에 새 회장을 맞는다. 2014년 11월부터 그룹을 이끈 4대 윤종규 회장이 물러나는 자리를 오는 21일 내정자 타이틀을 떼고 취임하는 양종희 부회장이 채운다.
양 내정자는 "국내 금융지주 1등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겠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종전의 경영방침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경영의 연속성을 이어 나가겠다는 생각도 간접적으로 밝혔다.
KB금융지주는 1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양종희 차기 대표이사 회장 내정자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출석 주식 수 대비 찬성률은 97.52%다. 양 내정자는 오는 21일부터 3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윤종규 '바통' 이어받겠다는 양종희
주주총회를 지휘한 윤종규 회장은 오는 20일을 끝으로 리딩금융그룹 수장 자리에서 내려온다. 윤 회장은 마지막 공식 일정인 이번 주총에서 "9년 전 가슴에 달았던 노란색 휘장과 이제는 교복 같은 노란 넥타이까지 행복한 추억만 가득 안고 물러난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모든 이해관계자의 변함없는 성원이 리딩그룹으로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축이었다"며 "KB금융그룹 전략의 연속성과 목표 추구를 위한 비전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양종희 내정자에게도 성원을 베풀어 달라"고 말했다.
양 내정자는 주총에서 "국내 최고 리딩 금융그룹인 KB의 회장 후보로 추천하고 선임해 주셔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내 경기나 금융산업이 어렵지만 주주들이 KB에 기대하는 것들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특히 양 내정자는 "그간 이사회와 윤종규 회장이 추진해 왔던 중장기 관리방안과 주주환원 강화 정책을 적극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면 자신의 색을 내보이기 위해 경영에 적잖은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양 내정자는 전임 윤 회장의 전략을 이어나갈 뜻을 내비친 것이다.
뺏는 것보다 지키는 게 어렵다
금융권에서는 윤종규 회장으로부터 1등 금융그룹을 물려받은 양종희 내정자의 어깨가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그룹이 '퀀텀 점프' 할 요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1등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재임 동안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을 국내 수위로 이끌었다. 옛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옛 현대증권(현 KB증권), 옛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 등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개선했다. 그 결과 신한금융에 내줬던 1위를 되찾아 오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KB금융지주는 은행, 증권, 생명보험, 손해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 전 금융권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은행 계열 금융지주 중 KB금융만큼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로 말하면 양종희 내정자가 이끌 KB는 M&A로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현재 진용에 있는 계열사들을 잘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다른 금융지주는 윤종규 회장 때 KB처럼 적극적인 M&A로 그룹의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라며 "반면 KB는 현재 가지고 있는 계열사들의 경쟁력을 한꺼번에 키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다른 금융지주들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완성형 금융그룹인 KB가 추가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는 부진했던 해외사업이 꼽힌다. 다른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는 국내와 달리 글로벌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글로벌 투자은행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양 내정자는 해외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