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지주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주주 추천 사외이사가 포진한 금융지주 속내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당국이 언급한 모범관행을 지켜야 하는 동시에 주주들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외이사 숫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과점 주주들의 이사회 장악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과점 주주체제 금융지주들의 고민거리다.
금융권에선 과점주주 체제 금융지주도 이사회 내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숫자를 늘려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 모범관행을 충족하려면 숫자 뿐 아니라 기존 금융과 경영 분야 등에 치우친 사외이사 경력 범위를 넓히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포진한 신한·우리금융
금융당국이 발표한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는 은행지주 및 은행들의 이사회에 이사의 전문분야, 직군, 성별 등과 관련해 은행별 영업 특성에 따라 전문성 및 다양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다.
금융당국은 "글로벌 주요 은행의 이사 수(13~14명) 대비 국내 은행의 이사 수가 7~9명으로 적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를 감안하면 금융지주들이 모범관행을 따르기 위해선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수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외이사 수 확대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관련기사: [사외이사 대수술]②"더 다양하게!"…금융권 현실은 '구인난'(12월26일)
특히 과점 주주들이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있는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은 구인난 뿐 아니라 주주들의 눈치도 봐야 해 다른 금융지주들보다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은 민영화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는 지분을 과점주주들에게 매각하고, 과점주주들이 사외이사를 1명씩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금융 전체 사외이사 6명 중 5명은 푸본생명과 키움증권, 유진프라이빗에쿼티(PE)와 한국투자증권, IMM프라이빗에쿼티(PE) 등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로 이뤄져 있다.
재일교포 출자금을 바탕으로 설립된 신한금융은 전체 사외이사 9명 중 3명이 재일교포가 추천한 사외이사다. 나머지 3명은 IMM PE와 베어링PEA,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추천한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일본계 주주들은 현재도 신한금융 지분 10~15% 상당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주 영향력 약해질까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한 금융지주들의 고민은 신규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할 경우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금융은 원활한 민영화를 위해 지분 매입 시 과점주주들이 사외이사 추천권을 받아 경영 및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외이사 수 증가로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영향력이 약해지면 우리금융의 지배구조에 또다시 변화가 생길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일본계 주주 추천 사외이사 비중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일본계 주주들의 목소리를 반영했던 신한금융도 사외이사를 늘리는 것이 부담이다.
이전부터 금융당국은 신한금융에 일본계 주주 추천 사외이사 비중이 지나치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이를 고려하면 일본계 주주 추천 사외이사를 추가로 확대하긴 쉽지 않다. 반면 추가 사외이사를 선임해 일본계 주주 추천 사외이사 비중을 줄이기에는 이미 과거 대비 이사회 내 비중이 줄어든 일본계 주주들의 '눈치 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신한금융의 일본계 주주 추천 사외이사 비중은 33%로, 지난 2020년 유상증자에 참여한 사모펀드 세 곳에 주주추천 제안권을 부여하면서 과거 40% 수준에서 줄어들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심의를 하기 때문에 사외이사 추천 권한을 갖고 있는 분들이 다양성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외이사 '다양성' 필요한데…결단 내릴까
주주 추천 사외이사들이 금융지주 이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지배구조는 양날의 검이다. '주인 없는 회사'인 금융지주보다 이사회 독립성이 높아질 수 있는 반면 CEO(최고경영자) 선출 및 경영에 주주들의 요구사항이 무분별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우선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사외이사 수를 확대하면 주주 추천 사외이사들이 포함된 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가진 약점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특정 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데, 이사회 내 견제와 균형이 이전보다 개선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관건은 단순 사외이사 수 확대를 넘어 사외이사 다양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중요한 건 사외이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외이사들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사외이사들이 늘어나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거수기 역할만 하게 된다면 인원을 늘리는 조치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 다양성 기준을 폭넓게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주주 추천의 경우 다양한 부문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의 한 금융 전문가는 "이사회의 다양성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사들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환경단체나 IT회사의 이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이)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고 경영 전략을 설정하거나 감시·감독을 할 역량이 되면 충분히 다양성을 충족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