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라고 지적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발맞추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경제·경영 부문 뿐만 아니라 ESG나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들을 등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지주 이사회 내에 ESG나 IT, 소비자 부문에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는 1~2명에 그치거나, 아예 없는 곳들도 많다. 당국이 '다양성'을 지적한 만큼 금융지주들도 내년 주총 전까지 신임 사외이사를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사의 경우 사외이사 겸직 금지 조항으로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하는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외이사 전문분야 '쏠림' 지적금융감독원은 지난 13일 발표한 '은행지주와 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서 은행지주 및 은행들이 '집합적 정합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구성때 가장 효과적인 역할 구성 및 추가로 필요한 특성, 이사회 규모 등을 논의해 이사회를 적합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은 특히 사외이사들의 전문성이 경제나 금융, 경제 부문에 쏠려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ESG 등 새로운 기준이 수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외이사들의 전문영역이 한 쪽에 쏠려 있을 경우 향후 금융산업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사 등에서 이사회 역량 평가를 위해 활용하는 '보드 스킬 매트릭스' 역량평가표에 나온 추가 역량은△IT/디지털 △ESG △소비자보호(필요시 추가) 등이다. 당국은 이에 해당하는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들을 추가로 구성할 것을 강조했다.
ESG·IT·소비자보호 전문가, 금융지주별 1~2명
물론 각 금융지주들은 2022년부터 △IT/디지털 △ESG △소비자보호 부문에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 등용에 힘써 왔다. 그러나 해당 분야 사외이사들의 숫자가 각 금융지주별로 1~2명에 그쳐 사실상 경제 및 경영 부문의 쏠림 현상은 여전한 상황이다.
KB금융은 전체 사외이사 7명 중 여정성 사외이사, 최재홍 사외이사가 각각 소비자학과 ICT부문 전문가로 구성돼 금융지주 이사회 중에선 그나마 구성이 낫다.
신한금융은 사외이사 9명 중 IT전문가인 최재붕 사외이사 한 명을 제외한 사외이사 전원이 경제와 경영, 법률, 회계 등의 전문가로 구성됐고, 하나금융 또한 사외이사 8명 중 추가 역량을 갖춘 사외이사는 ESG 전문가인 원숙연 사외이사 한 명에 그쳤다.
우리금융도 6명의 사외이사 중 △IT/디지털 △ESG △소비자보호 부문의 사외이사는 ESG전문가인 송수영 사외이사 한 명에 그쳤다. 농협금융도 7명의 사외이사 중 하경자 사외이사가 유일하게 ESG 전문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금융지주들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했다. BNK금융지주와 DGB금융, JB금융은 사외이사 중 △IT/디지털 △ESG △소비자보호 부문의 전문가가 없었다.
금융지주들은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이미 각 후보를 대표하는 전문성 뿐만 아니라 여러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사를 선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통해 각 사외이사별 이력과 전문성 등의 자격요건을 공시하고 있다"며 "경제·경영 부문의 전문가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ESG와 관련해 여러 위원회 등에서 지속해서 활동하며 이력을 쌓아 왔던 이사들도 있어 다양성 제고를 위해 이와 관련한 부분들을 (이사 선임에)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 쏠림·여성 비중 어쩌나…'겸직 금지'에 구인난
당국은 은행권 사외이사의 직군 또한 학계가 37%, 금융계 22%, 관료 12%, 비금융계 11%로 구성돼 학계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 KB금융와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전체 사외이사 7명 중 3명(43%), 신한금융 9명 중 3명(33%), 하나금융은 8명 중 3명(38%)이 현직 교수로 구성됐다. 1명을 제외하고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로 이사회가 구성된 우리금융만 현직 교수가 사외이사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금융지주들은 DGB금융지주가 현직 교수 출신 사외이사가 7명 중 3명(43%)으로 많았고, BNK금융은 6명 중 1명으로 전체의 17%를 차지했다. JB금융(경제·경영부문 전문가들로 구성)만 7명의 사외이사 중 교수 출신 사외이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외이사 중 여성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낮은 점 또한 지적됐다. 당국은 이번 지배구조 모범관행 자료에서 "ECB는 감독대상인 유럽 은행의 여성이사 비율이 평균 34%에 달하지만 여전히 젠더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고 언급했다. 금융권에선 사실상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주요 은행계열 금융지주들의 경우 전체 사외이사 중 여성 이사 비중은 19%에 그쳤다. 지난해 8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이사회 전원은 특정 성의 이사로 구성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이사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은행들은 여성 이사가 없는 곳도 8곳(우리·부산·경남·대구·광주·전북·케이뱅크·토스뱅크)에 달했다.
금융지주들은 사외이사 겸직 금지 조항으로 이같은 전문성을 지닌 사외이사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시행령은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 사외이사가 다른 회사 사외이사를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반 산업과 달리 선임 기준이 더욱 까다롭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의 겸직이 가능한 일반 산업과 달리 금융사 사외이사는 한 번 맡게 될 경우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를 전혀 맡을 수 없다"며 "학계에 있는 분이 아니면 사외이사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서도 후보군들을 찾아다니며 수락을 부탁드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