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사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0여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1대주주로서 주식을 온전히 틀어쥐고 있다. 후계 0순위라고는 하지만 장남은 경영 능력 입증과 더불어 재원 확보 등 향후 주식 대물림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뿐만 아니다. 모기업의 계열사로 잡히지 않아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오너 일가의 기족기업들이 적잖다. 특히 이곳에서는 안주인이 존재감이 감춰져 있다. 비록 후계구도에서는 밀려나 있지만 제 몫을 꿰차고 있는 차남의 행보 또한 도드라진다. 일양약품(一洋藥品) 오너 일가는 ‘4인4색’이다.

1999년 2대 정도언 체제 개막
중견 제약사 일양약품은 고(故) 정형식(1922~2018) 창업주가 1946년 7월 설립한 공신약업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57년 7월 ‘노루모’를 개발해 사업 기반을 잡았다. 한때 국민 위장약으로 불렸던 일양약품 1호 의약품이다.
1971년 6월 국내 최초 인삼드링크 ‘원비-디’로 돌풍을 일으켰다. 일양약품공업㈜로 사명을 바꿔 달며 법인으로 전환한 때가 그 해 12월의 일이다. 1974년 8월에는 증시에도 입성했다. 1985년 6월 선보인 영지버섯 음료 ‘영비천’ 역시 히트를 치면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1991년 1월 정 창업주의 회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일양약품이 제약업계 매출 2위로 올라섰던 해다. 거침없었다. 중국에 1996년 10월 통화일양보건품유한공사, 1998년 7월 양주일양제약유한공사를 차례로 설립,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 무렵 일양약품의 2대 체제가 막이 올랐다. 정 창업주가 1998년 6월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이듬에 6월에는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77세, 희수(喜壽)를 맞았던 때다.


2023년 오너 3세-전문경영인 과도 체제
정도언(77) 현 회장이 가업을 승계했다. 창업주의 4남1녀 중 장남이다. 중앙대 약대 출신이다. 1976년 일양약품에 입사해 1994년 5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경영 최일선에 등장했다. 부친이 퇴진한 지 1년여 뒤인 2001년 3월 53세 때 회장에 올랐다.
오랫동안 ‘노루모’, ‘원비-디’, ‘영비천’으로 각인돼 왔던 일양약품을 일반의약품(OTC)에서 전문의약품(ETC) 제약사로 체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일양약품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기반이 된 국산 신약 14호 항궤양제 ‘놀텍’, 18호인 아시아 최초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를 개발한 시기가 각각 2008년, 2012년이다.
한데, 왕성하게 경영 활동을 이어가던 정 회장이 65세 때인 2013년 5월 돌연 대표와 사내이사 직을 모두 내려놓으며 한 발 비켜났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는 3대 후계자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정 창업주의 장손이자, 정 회장과 부인 유경화(73)씨와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 정유석(49) 현 사장이다.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30살 때인 2006년 일양약품 마케팅 담당 과장으로 입사하며 가업에 입문했다. 해외사업․마케팅본부장 등을 지냈다. 정 회장이 경영 2선으로 후퇴한 때는 정 사장이 2011년 5월 상무 승진과 함께 이사회에 합류한지 2년이 지난 37살 때다.
예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일양약품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린 적 없는 2살 아래 동생 정희석(47) 일양바이오팜 대표와 대비된다. 이렇듯 정 회장의 후계구도는 일찌감치 장자 승계로 가르마가 타졌다.
정 사장은 이어 2014년 전무, 2018년 부사장을 거쳐 입사 17년만인 2023년 4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공동대표 자리를 꿰찼다. 이후 정 사장은 전문경영인 김동연(75) 현 부회장의 지원을 받으며 일양약품을 이끌고 있다.
김 부회장은 1976년 입사 이래 47년째 재직 중인 정 회장의 가신(家臣)이다. 중앙연구소장을 지낸 뒤 2008년 3월 각자대표에 이어 정 회장이 퇴임한 뒤로는 줄곧 단독대표로 경영을 총괄해왔다. 3세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후계자의 경영 멘토인 셈이다.

‘캐시카우’ 중국 통화일양 청산 직격탄
반면 정 사장 앞에 놓인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당초 일양약품을 위시한 5개(국내 3개·해외 2개) 계열사 가운데 ‘빅3’ 중 하나가 대표 선임 직후인 2023년 5월 청산됐다. ‘원비-디’ 중국 생산․판매 채널 통화일양이다. 2022년 매출(별도) 404억원에 영업이익 190억원, 이익률 47.0%를 찍었을 정도로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통화일양은 일양약품이 최대주주로서 45.9%, 정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등 특수관계인이 19.4% 도합 65.3%의 지분을 소유했다. 이외 34.7%는 중국 통화시가 보유했다. 하지만 중국 합작사와의 분쟁으로 해체됐다.
일양약품의 작년 영업이익(연결)은 110억원이다. 2021년 410억원에 비해 거의 4분의 1 토막 났다. 이익률은 11.0%에서 4.1%로 추락했다. 위궤양 치료제 ‘알드린’ 등 ETC 중국 생산법인 양주일양이 연결종속회사에서 빠진 이유도 있지만 알짜배기 통화일양 청산의 직격탄을 맞은 데 기인한다.
일양약품 본체 또한 작년에는 성장이 정체됐다. 국내 계열사 일양바이오팜(전문의약품 생산), 칸테크(IT)를 포함해 연결매출이 2690억원으로 2023년(2670억)에 비해 도긴개긴이다. 신약 ‘놀텍’과 ‘슈펙트’의 적응증 확대 및 해외 진출 부진 등이 요인이다.
양주일양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연결 대상은 아니지만 일양약품이 52% 1대주주로 있는 중국 법인이다. 매출(별도)이 2023년 1150억원에서 작년에는 1100억원으로 주춤했고, 영업이익은 78억원에서 59억원으로 감소했다. 2021년 92억원에서 매년 예외 없이 뒷걸음질 치는 양상이다.
바꿔 말하면 정 사장은 경영 능력을 검증할 진짜 시험대에 들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차기 사주로서 오너십을 확보하기까지는 더욱 갈 길이 멀다. 일양약품 현 지분이 4.24%뿐이다. 정 회장이 21.84% 1대주주로서 14년 동안 단 한 주도 변동 없이 틀어쥐고 있어서다. (▶ [거버넌스워치] 일양약품 ②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