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에 무심한 듯 보여도 보폭이 결코 좁지 않다. 지금은 부동산 가족법인을 나 홀로 챙기고 있다. 특히 모기업이 지점으로 빌려 쓰고 있는 건물을 소유한 회사다. 중견 제약사 일양약품의 안주인은 그런 존재다. 일양약품 오너 지배구조에 감춰져 있는 하나의 단면이다.

은산, 2대 사주 정도언 일가 가족기업
일양약품 2대 오너 정도언(77) 회장의 부인 유경화(73)씨는 일양약품 이사회에 적(籍)을 둔 적이 없다. 현재 정 회장 21.84%를 비롯해 26.8%의 지분을 소유 중인 8명의 오너 일가 명단에도 들어있지 않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정 회장의 부인은) 줄곧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아 왔다”고 말했다.
반면 일양약품 계열사로 눈을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IT 계열사 칸테크가 1994년 9월 설립된 뒤 초기부터 2010년 2월까지 감사로 활동했다. 이뿐만 아니다. 현재 유일한 등기임원으로 직접 경영을 챙기는 외부 회사도 있다. 바로 ㈜은산(垠産)이다.
일양약품을 정점으로 칸테크와 일양약품 신약 ‘놀텍’, ‘슈펙트’ 등 ETC(전문의약품) CMO(의약품위탁생산) 업체 일양바이오팜, 위궤양 치료제 ‘알드린’ 등 중국 ETC 생산법인 양주일양 등 4개사로 이뤄진 일양약품 계열로 묶이지 않는 일종의 가족사 중 하나다.
1985년 2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됐다. 정 회장의 두 아들 정유석(49) 일양약품 사장과 정희석(47) 일양바이오팜 대표가 한 때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다. 2005년 3월~2011년 3월 6년간이다. 특히 후계자인 정 사장이 일양약품에 입사해 가업에 입문한 시기가 2006년인 점을 감안하면, 은산에는 이보다 앞서 발을 들였던 것을 볼 수 있다.
형제가 합류할 당시 은산의 대표에 오른 이가 유경화씨다. 설립 이래 줄곧 감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난 뒤다. 게다가 2011년 3월 두 아들이 물러난 뒤로는 은산의 이사진이 유 씨 딱 1명이다. 감사도 없다. 주주는 확인되지 않지만, 은산을 일양약품 안주인의 1인 회사 내지 가족기업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정도언, 의정부 개인건물 32억에 매각하기도
은산의 사업 내용 역시 흥미롭다. 원래는 일양약품이 1985년 6월 개발한 영지버섯 음료 ‘영비천’의 판매를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업체다. 일양약품이 수입한 피부 미용팩 등을 팔기도 했다.
당시에는 기업 볼륨이 제법 됐다. 확인 가능한 범위로 1994년 말 총자산 135억원에 1991~1994년 매출이 적게는 225억원, 많게는 363억원이나 됐다. 영업이익 또한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한 해 평균 4억원을 벌어들였다.
다만 이후 유통업을 접고, 현재는 건물 임대업만 하고 있다. 한데 일양약품과 밀착해 있다. 은산이 본점을 두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소재 은산빌딩에 비밀이 감춰져 있다. 1989년 3월 은산이 매입한 4층짜리 상가건물이다.
즉, 일양약품의 안주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법인 건물을 일양약품이 서울지역의 일반의약품 약국 판매․관리를 담당하는 OTC사업본부 서울약국지점으로 빌려 쓰고 있다. 결국 은산이 일양약품으로부터 임대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말이 나온 김에, 일양약품은 정 회장 개인 소유의 건물을 지점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위치한 강원지점이다. 정 회장이 1983년 12월 매입한 지하 1층~지상 3층짜리 건물이다.
한편으로는 정 회장 일가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한때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위치한 지하 2층~지상 7층짜리 현 다남빌딩도 가지고 있었다. 이 상가건물은 2008년 7월 개인에게 32억원을 받고 처분했다. (▶ [거버넌스워치] 일양약품 ③편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