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육량과 근력, 근 기능이 점차 저하되는 근감소증은 아직까지 승인된 치료제가 없는 질환이다. 낙상과 골절 위험을 크게 높이고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을 악화시킬 정도로 심각한 병이다. 과거에는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봤으나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영양·호르몬 불균형 등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질병통계분류에 병명코드(M62.84)가 등재됐고, 2021년에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도 진단코드(M62.5)로 포함되면서, 치료가 필요한 독립적인 '질병'으로 공식 인정돼 질병 연구와 치료제 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신약 개발에 도전했지만 유효성이나 안전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면서 근감소증 치료제 시장은 오랫동안 공백 상태다. 이처럼 아직 승인된 치료제가 없는 미개척 시장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염증·면역·대사 조절 등 차별화된 기전을 내세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HK이노엔·이엔셀 임상 개발 속도
HK이노엔은 지난달 카인사이언스와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염증 조절 펩타이드 기반의 혁신 신약 후보물질인 'KINE-101'에 대한 근감소증 치료제 임상 2상 진입을 추진하며 파이프라인 확장에 나섰다. KINE-101은 염증 반응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 ERDR1(적혈구 분화 조절인자1)에서 유래한 펩타이드로, HK이노엔은 면역 체계의 균형을 회복하고 염증을 완화하는 기전을 통해 근감소증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HK이노엔은 현재 국내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비만 치료제 'IN-B00009'와의 병용 투여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기존 비만 치료제들이 체중 감소와 함께 근손실을 동반하는 한계를 보여온 만큼, KINE-101 병용 시 근육량 감소 완화 효과를 확인할 계획이다.
플루토도 지난 7월 국내에서 염증 억제 기전의 근감소증 치료제 후보물질 'PLH-2301'의 임상 2상 계획을 승인받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PLH-2301은 동물실험에서 근육 손상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5-리폭시게네이즈(5-LOX) 효소를 억제함으로써 염증 반응을 줄여 근육 손상을 방지하는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이엔셀은 동종 제대혈(탯줄 혈액) 유래 줄기세포 치료제 'EN001'을 근감소증 치료제로 개발 중이며,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2a상(1·2상 동시 진행) 계획을 승인받아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EN001은 근감소증 환자를 대상으로 손상된 근육 조직을 재생하고 근육세포 분화를 유도하는 성장인자와 사이토카인을 분비해 근육량 보존 및 근력 저하 개선 효과를 확인할 계획이다.
애니머스큐어는 신규 타깃 기반의 경구용 저분자 화합물 신약 후보물질인 'AMC6156'의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다. AMC6156은 근감소증 치료를 위해 근육 세포의 '성장'과 '에너지 공급'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동시에 공략하는 복합 기전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아벤티·트윈피그바이오랩, 약물 재창출 전략
이미 출시됐거나 임상시험에서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을 다른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는 '약물 재창출' 전략을 통해 근감소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곳도 있다.
아벤티는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근육 재생을 촉진하는 기전의 'AVTR101'에 대해 임상 2상 계획을 승인받았다. AVTR101은 위장 통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을 재창출한 파이프라인으로, 근육 내 줄기세포인 '근육 위성 세포(Muscle Satellite Cell)'를 활성화해 잠들어 있는 세포를 깨우고 증식시켜 손상된 근섬유를 재생하고 근육량을 증가시킨다.
트윈피그바이오랩은 일반의약품(OTC)으로 허가된 성분을 근감소증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개발 중인 후보물질 'TB796'은 근육 손상 과정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대식세포(M1)와 근육 회복을 촉진하는 대식세포(M2) 간 균형을 조절해 근육 위축을 완화하는 기전을 갖는다. 초기 근육 손상 시 나타나는 과도한 염증 반응으로 인한 근육 분해를 줄이고, 회복 단계에서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근육 재생을 돕는 인자들의 분비를 촉진하는 방식이다.
수십조원 성장 잠재력 시장…차별화된 기전 '승부수'
근감소증은 오랫동안 제약·바이오 업계의 난제로 꼽혀왔다. 화이자, 노바티스, 사노피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근육량 증가가 실제 신체 기능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심혈관계·호르몬 관련 부작용이 확인되며 개발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근감소증은 높은 미충족 의료 수요(Unmet Medical Need)를 지닌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제 공백 상태가 장기간 지속돼 왔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근감소증 유병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당뇨병, 암, 만성 염증성 질환 환자나 장기 입원 환자에서 2차성 근감소증이 흔히 나타나며, 환자의 독립적인 생활능력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세계 근감소증 환자 수는 약 2억7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치료제 시장 규모 역시 수십조 원대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 표준 치료제가 없는 만큼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한 첫 치료제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근감소증 치료제 개발이 실패한 이유는 단순히 근육량 증가라는 단일 기전에 초점을 맞춰 접근했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했다"면서 “최근 국내 기업들은 염증, 면역, 대사 조절 등 근감소증의 근본 원인을 함께 겨냥하는 복합적이고 차별화된 기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