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최근 국내 조선업체들이 그동안 저가 중국산 후판을 사용하던 것에서 탈피, 가격은 높지만 고품질의 국내산 후판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국내 철강업계에겐 희소식이다.
◇ 바다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Clarkso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전년동기대비 39.5% 증가한 1666만CGT를 기록했다. 지난 2008년 이후 추세적으로 하향하던 발주량이 다시 반등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이 중 599만CGT를 수주했다. 전년대비 60.5% 증가한 수치다. 선박 발주량이 늘고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량도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선박 건조에 필요한 재료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업체에 선박 건조용 후판을 공급하는 국내 철강업체들의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다. 후판은 두께가 6㎜ 이상의 두꺼운 강판이다. 주로 선박용이나 건설용으로 쓰인다. 선박용은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 벌크선과 같은 상선에 많이 사용된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세계 최대 규모(1만8270TEU) 컨테이너선인 '머스크 맥키니 몰러(Maersk MC-Kinney Moller)'호. 철강업계에서는 최근 조선업계에 부는 초대형 에코십 트렌드가 후판 생산·판매량을 증가시키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전세계 선박 발주량 증가를 견인한 컨테이너선 등 상선의 발주량 증가는 곧 후판 사용처가 늘어난다는 신호다. 그동안 국내 조선업체들은 업황 침체로 주로 해양플랜트 수주에 집중했다. 해양플랜트는 상선에 비해 크기가 작아 후판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후판이 많이 사용되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상반기에 총 90척이 발주됐다. 작년 한해 총 발주량인 74척을 이미 넘어섰다.
여기에 최근 상선의 트렌드가 초대형, 에코십(echo ship)이라는 점도 철강업계에겐 호재다. 해운업황 침체와 고유가로 선주사들은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적은 연료를 사용해 수송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지난 6월말 현재 전세계 8000TEU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는 총 53척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 연간 발주량을 두 배 이상 초과했다.
◇ 생산량·내수 판매 모두 '반등'
이런 대외적인 여건의 변화에 힘입어 국내 철강업체들의 후판 생산량은 지난 2분기 224만톤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 이후 5분기만에 반등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체들의 후판 생산량은 지난 2011년 1134만2000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작년 1022만5000톤으로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442만톤으로 전년대비 22.9% 감소했다.
하지만 철강업계에서는 '5분기만에 반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철강 시황이 계속 침체일로였던 점을 감안하면 반등 자체가 반갑다.
[자료 : 한국철강협회]
또 조선업황 개선으로 선박 발주 증가가 계속된다면 3분기와 4분기에도 후판 수요 증가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도 철강업계가 지난 2분기 후판 생산량 증가에 의미를 두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철강업체들은 지난 2분기 국내 철강업체들의 후판 내수판매가 작년 3분기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분기 국내 철강업체들의 내수판매량은 177만톤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3분기에 기록한 196만톤 이후 첫 반등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후판 생산량과 내수 판매가 모두 증가한 것은 업황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며 "향후에도 점진적으로 생산량과 판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값만 싼 중국산 후판 'OUT'
이와 함께 그동안 국내 후판 시장을 잠식해왔던 중국산이 점점 밀려나고 국내산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철강업계에 호재다.
중국산 후판은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점유율을 늘려왔다. 품질은 국산 후판보다 떨어지지만 가격이 국내산에 비해 톤당 10만원 가량 저렴하다는 것이 큰 무기였다. 실적 부진으로 원가절감에 고민하던 국내 조선업체들은 점차 중국산 후판 사용량을 늘릴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1년 20%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체들이 해양플랜트에 집중하기 시작한 작년부터 중국산 후판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조선용 후판. 최근 선주사들이 초대형 고연비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발주하면서 저품질의 중국산 후판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국내 철강시장도 후판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최근의 반등 신호가 얼마나 이어질 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양플랜트는 특성상 극한 작업을 많이 한다. 따라서 고품질의 후판이 아니면 작업 환경을 버텨낼 수 없다. 최근 선주사들이 요구하는 초대형·고연비 선박에도 고품질의 후판이 필수다. 따라서 조선업체들도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이 뛰어난 국산 후판을 찾는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선주사들의 선박 품질에 대한 요구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며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자재를 쓸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저품질의 중국산 후판은 사용량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반기에도 조선 업황이 계속 반등의 시그널을 보일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 또 현대제철 신후판공장이 오는 9월부터 가동을 시작하면 자칫 후판 공급과잉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종형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현대제철의 신후판 공장 가동에 따른 국내 후판시장 경쟁 격화는 국내 철강업체들에게 분명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