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1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장 모(26, 여)씨는 상반기 취업 시즌을 앞두고 이것 저것 준비할 게 많아 끙끙대고 있다. 자기소개서가 가장 큰 숙제다. 그는 "글쓰기와는 담을 쌓고 지내다가 갑자기 글짓기를 하려니 막막했다"며 "자소서 문항이 너무 까다로워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고 말했다. '토익' 역시 기본 점수는 넘겼지만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매달 시험을 치르고 있다. 스터디그룹에서 '한국사' 공부도 추가했다. 그는 "자소서 준비도 벅찬데 갈수록 태산"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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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채용 기준이 높아지면서 구직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자소서, 한국사, 영어 등 취업 관문에서 뚫어야 할 '3종 세트' 준비에 구직자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자소서 질문 항목이 점차 난해하게 바뀌고 있는 데다 작년부터는 한국사를 보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영어점수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토익 점수를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어서다.
◇ 신춘문예급 자소서에 '두손 두발'
취준생들은 자기소개서 작성을 가장 어려워한다. 구직자 4명 중 3명이 자기소개서 항목이 어려워 입사지원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밝힐 정도다.
그러다보니 자기소개서 인터넷 강의나 첨삭과외가 취준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에 거래되는 자기소개서 대필도 성행하고 있다.
자소서의 '난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공채를 진행한 신한은행이 200자 원고지 60장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한 것이 한 사례다. 신춘문예 단편소설 원고량과 맞먹는다.
취업준비생 채모(25,여) 씨는 "자소서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면 작가로 등단해도 되겠다는 자조섞인 말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 측에서는 답하기 까다롭거나 의도를 알아내기 어려운 질문을 자소서에 넣어 지원자들의 역량을 파악하겠다는 의도지만 그만큼 취준생들의 부담은 커진 셈이다.

▲ 지난해 하반기 신한은행 신입채용 자소서 문항 |
◇ 한국사, 쉽다고 믿었다간 '쓴맛'
삼성, 현대차, LG, SK, GS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이 한국사를 강조하면서 구직자들의 부담은 더욱 늘었다. 인적성시험에 한국사 문항을 추가하거나 관련 자격증을 우대하는 식이다. 기업 측은 지원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출제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문항이 까다롭다는 평이 나온다. 취업준비생 황모(25, 여) 씨는 "취업설명회에서 한국사를 쉽게 출제할 거라는 담당자 얘기만 믿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가 시험장에서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난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서는 '고려시대 발생한 사건 순서' '개화기 조선을 침략한 국가 순서' 등 외우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운 한국사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한국사 스터디가 유행이다. 한국사 흐름을 짚고 대표문항을 찍어 주는 '인터넷 쪽집게 강의'도 등장했다. 현실적으로 '취업 과목'이 하나 더 추가됐다는 게 취준생들의 설명이다.

▲ 지난해 SK그룹의 인적성시험인 SKCT에 출제된 한국사 관련 문항 일부 |
◇ 기본스펙 토익, 안 볼 수 없어
'탈스펙' 채용이 확산되면서 영어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영어 시험을 안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임지현 동국대학교 대학청년고용센터 취업컨설턴트는 "몇몇 기업에서 영어를 안 본다고 해서 그 기업에만 지원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취업 확률을 높이려면 되도록 많은 기업에 지원해야 하니까 영어 점수를 따 놓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준생 10명 중 9명(89.7%)은 공인 어학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원수강료·문제집 구입비와 응시료 등 어학시험에 쓰는 비용도 한달 평균 32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어 점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구직자들에게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 때문에 사회적 낭비가 크다"며 "산업계 전체가 쓸데 없는 영어점수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