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장치 조작 사기극의 후폭풍이 메가톤급이다. 당사자인 폭스바겐은 수십 조원대 손실이 예상되고, 디젤 진영의 약세로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할 전망이다. 폭스바겐이 도요타, GM과 함께 구축해온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빅3 판도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이 틈새를 얼마나 파고들 것인지도 관심사다. 폭스바겐 사태의 원인과 배경, 업계에 미치는 파장, 향후 전망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폭스바겐은 디젤의 대명사였다.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연비와 친환경을 모두 잡았다고 했다. 이른바 '클린 디젤'의 선구자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폭스바겐이 자랑스럽게 내놓았던 '클린 디젤'이 사실은 '더티(Dirty)' 플레이의 산물이었음이 드러났다. 소비자들을 속여왔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디젤 종주국인 독일의 대표 기업 폭스바겐이 가솔린 우위의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에 있다. 디젤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기보다는 눈속임으로 시장을 확대하려했던 무모함이 대형 참사를 빚은 것이다. 폭스바겐의 잘못된 선택은 결국 전세계 디젤차 시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 넣었다.
◇ 디젤의 한계가 초래한 비극
디젤 엔진은 프랑스 태생의 독일 기계 기술자인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 1892년 처음 개발했다. 그의 이름을 따 디젤 엔진이라고 이름지어졌다. 디젤 엔진은 먼저 개발된 가솔린 엔진에 비해 출력이 우수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주로 상용차와 대형차 등에 사용됐다.
사실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 모두 원유를 정제한 후 나오는 최종 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원유를 정제하면 전체를 100%로 봤을 때 가솔린 21%, 경유 9%가 얻어진다. 정제시 온도에 따라 부산물이 달라진다. 가장 낮은 온도에서 LP가스가, 가장 높은 온도에서 중유(重油)가 생산된다.
가솔린은 경유보다 낮은 온도에서 생산된다. 가솔린은 30~140℃에서 증류되는 반면 경유는 250~350℃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경유는 낮은 온도에서 발화가 불가능하다. 디젤 엔진이 고온·고압으로 작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덕에 가솔린 엔진보다 큰 폭발력을 얻으며 소위 '힘이 좋은' 엔진으로 불린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
하지만 단점도 있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가솔린 엔진은 '점화'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 디젤 엔진은 '폭발'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가솔린 엔진에 비해 유해가스가 더 많이 배출된다. 가솔린 엔진 배출 가스 중 유해가스로 분류되는 것은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산화물(NOx)이다. 디젤은 여기에 미세먼지(PM)와 매연(Smoke)이 추가된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NOx다. 디젤 엔진 배출 가스 중 문제가 되는 것은 NOx와 PM이다. 하지만 PM은 매연저감장치로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NOx는 다르다. 디젤 엔진은 고온에서 공기 중 함유된 질소와 산소가 반응을 일으켜 작동한다. 따라서 배출가스에 NOx 함유량이 높다. 가솔린 엔진은 삼원촉매(TWC) 기술을 이용해 배기가스 내 유해 물질을 무해 성분으로 환원할 수 있다. 디젤 엔진에는 이런 기술이 없다.
따라서 디젤 엔진에서 NOx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소 온도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 대신 이렇게 되면 불완전 연소로 매연 농도가 높아지고 연비가 떨어진다. 반대로 연소 온도를 높이면 연비는 좋아지지만 NOx 배출량은 많아지는 식이다. NOx 배출량과 연비는 반비례 관계인 셈이다. 폭스바겐은 이런 디젤의 태생적 한계를 그동안 눈속임으로 덮어왔다. 여기에 '클린 디젤'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판매를 확대해왔다.
◇ 폭스바겐, 무리수 둔 이유
폭스바겐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R&D에 투자하는 기업이다. EU 발표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연간 117억4000만 유로를 R&D에 투자한다. 여기에 자동차 종주국인 독일의 대표 기업이자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이라는 점은 그동안 폭스바겐이 손쉽게 소비자들을 기만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폭스바겐은 유럽에 뿌리를 박고 있는 기업이다. 따라서 유럽의 정서를 대변한다. 유럽은 디젤이 대세인 시장이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원유 생산량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해 가솔린 뿐만 아니라 경유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 산물이 디젤 차량 확대였다. 그 결과 현재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3%에 달한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미국의 경우 풍부한 원유 생산량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수년 전부터 셰일오일 개발에도 착수했다. 유럽에 비해 원료의 측면에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자연히 디젤보다는 가솔린 모델들이 인기를 끌었다. 디젤 차량이 유난히 미국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다. 작년 기준 미국의 가솔린 차량 점유율은 96%다. 디젤 차량은 1%에 불과하다.
▲ 자료=KB투자증권. |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 차량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곳은 유럽과 인도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의 디젤 모델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유럽 업체들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폭스바겐은 수십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남은 시장은 미국 뿐이다.
하지만 미국은 가솔린 우위의 시장이다. 게다가 배기가스 규제기준이 유럽에 비해 2배 가량 높다. 배기가스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디젤 차량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폭스바겐이 '조작'이라는 무리수를 둔 까닭이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독일 업체들은 그동안 유럽 기준인 ‘유로 6’를 충족하는 디젤 차량들은 배기가스 유해성이 가솔린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폭스바겐의 모토였던 ‘클린 디젤’ 마케팅의 기반이 됐다. 미국 디젤 차량 시장에서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시장 점유율은 67% 가량이다. 최근에도 조금씩 점유율을 확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폭스바겐은 물론 독일 차량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게 됐다.
◇ 미국은 유럽과 달랐다
유럽과 미국의 디젤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폭스바겐이 이런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폭스바겐이 유럽에서의 경험만을 앞세워 미국 디젤 시장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봤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디젤 차량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시장 진입 단계부터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유럽의 디젤 시장이 활성화된 데에는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 덕이 컸다. 지난 70년대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유럽에서는 정책적으로 디젤 승용차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가솔린 가격 급등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배기가스 저감 장치가 개발됐고 고유가와 더불어 고연비 차량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이 때문에 유럽은 디젤 차량의 천국이 됐다. 한마디로 디젤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던 셈이다.
▲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70년대 유가 급등으로 유럽 각국 정부가 디젤 차량을 장려하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은 유럽과 달랐다. 미국은 디젤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 |
하지만 미국은 디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미국은 대륙 국가다. 분지와 같은 지형이 많아 유해물질이 일단 배출되면 강이나 바다를 통해 배출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또 미국은 국민보건을 위해서는 가솔린과 디젤에 대해 같은 배출가스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 기준이 높은 이유다.
아울러 미국은 경유를 전략 비축유로 사용하고 있다. 경유는 전시를 대비해 쌓아두어야 하는 품목이지 민간에서 대량으로 소비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경유의 민간 소비 촉진을 유도하지 않는다. 반면 유럽에서는 원유를 정제하면 생산되는 경유를 굳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승용차를 통해 소비해 한정된 자원의 소비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이 경유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시각 차를 간과한 것이 이번 사태를 촉발한 또 다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로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에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가운데 디젤을 포기하고 하이브리드로 연비규제를 충족해야 하는 이중고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