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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현대상선, 자구안으로 살길 찾을까

  • 2016.01.22(금) 17:27

벌크 전용선 사업부 매각 추진..임시방편
외부 자금줄 막혀..업황 부진 겹치며 진퇴양난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현대상선이 알짜 사업인 벌크 전용선 사업을 매물로 내놨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순조롭게 진행돼왔던 현대그룹의 자구안 이행이 현대증권 매각 불발로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현대상선의 실적 악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번졌다.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이번 매각으로 한숨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무너진 재무구조를 재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재출연과 유상 증자 등 더욱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달 말쯤 현대상선이 고강도 자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급한 불은 끄겠지만

작년 3분기 현대상선은 680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지난 2014년부터 분기별로 살펴보면 작년 1분기에 4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을 제외하고는 매분기 대규모 손실을 입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에 따른 업황 침체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형국이다.

계속된 적자에 현대상선은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와야 했지만 이미 조달한 자금의 규모가 많아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작년 하반기 영구채 발행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연기금 등 일부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린 데다 현대증권 매각 실패에 따른 신용등급 강등으로 출자자들이 투자의사를 접었다.


현대상선은 오는 4월과 7월 각각 1200억원, 24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상환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현대아산 주식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하고 일부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 4500억원을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상선의 실적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갈수록 재무구조가 더욱 안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 자금줄이 막힌 데다 실적마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금 수혈밖에는 방법이 없다. 현대상선이 최근 벌크 전용선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현재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에이치라인해운이 1000억원에 이를 인수하고 현대상선 부채 5000억원을 떠안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벌크 전용선 사업은 알짜 사업이다. 특정 화주(貨主)와 장기간 계약을 맺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안전한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다. 현대상선이 이런 알짜 사업을 내놓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매각이 성공하면 현대상선은 일정 정도의 현금 확보는 물론 현재 800%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70%포인트 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이 부채비율 낮추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정부는 작년말 약 1조4500억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조선·해운업계를 지원키로 했다. 단 부채비율이 400% 이하여야 한다. 외부 자금줄이 막힌 현대상선으로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당장 7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있어야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

◇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업계와 시장은 현대상선이 이만한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 현대상선 법정관리설이 나오는 이유다. 만일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돌입할 경우 한앤컴퍼니는 벌크 전용선 사업부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와 시장의 시선은 차갑다.

이에 따라 업계와 시장에서는 현대그룹과 현대상선이 더욱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고 보고 있다. 벌크 전용선 사업 매각은 현대상선이 가장 빨리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자구안의 일부다. 하지만 이보다 강도높은 자구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현대상선은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 업계와 시장에서는 현대상선이 벌크 전용선 사업부 매각 이외에 더욱 구체적이고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법정관리행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그룹과 현대상선은 현재 내부적으로 자구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이달 중 자구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그 자구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다. 만일 정부와 채권단이 추가 자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설(說)'로 돌고 있는 현대상선의 법정관리행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현대그룹과 현대상선이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자산 중 매각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벌크 전용선 사업부를 매각하면 남는 것은 컨테이너 사업부만 남는다. 이마저 매각하면 현대상선은 없어지게 된다. 현재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부산신항만 지분도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현금 유입효과가 작다.

 
업계에서는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꼽고 있다. 일반 공모 유상증자는 현대상선의 주가 흐름상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오너와 대주주를 대상으로 한 제3자 방식의 유상증자가 가장 현실성이 높은 방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현재 추가적인 자금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추가 자구안에 획기적인 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결국 법정관리로 가는 수밖에는 달리 답이 없어 보인다"라고 밝혔다.

◇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대상선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불안하다. 주가가 이를 말해준다. 작년 1월22일 1만150원이었던 현대상선의 주가는 1년 후인 이날 2830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새에 주가가 72.1%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만도 29.3% 하락한 상태다.

현대상선의 주가가 이처럼 약세인 것은 그룹 리스크와 더불어 해운업황 부진까지 겹친 탓이 크다. 당초 현대그룹의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현대상선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다소 나아졌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비록 업황이 좋지는 않지만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로서 버텨낼 수 있으리라는 시장의 신뢰가 생겼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자구안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여기에 해운 업황은 끝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올들어 잠깐 반등하는가 싶었던 운임도 다시 하락한 상태다. 선박 공급 과잉과 물동량 부족에 따른 해운업황 부진은 언제쯤 나아질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돼있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작년 4분기 현대상선의 실적도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의 예상치는 약 800억원 중후반대의 영업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작년 한해에만 약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실적 악화는 결국 외부 자금 수혈에 걸림돌이 되고 이는 곧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진다. 현대상선 법정관리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상선의 현재 상황은 쉽게 타개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외부의 지원 없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있는 데다 향후 전망도 좋지 않은 만큼 이제는 오너 일가와 대주주가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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